밟을때는 낭만, 쓸어보니 낭패

밟을때는 낭만, 쓸어보니 낭패

입력 2013-11-21 00:00
수정 2013-11-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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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의 전쟁’… 본지기자, 환경미화원 직접 체험해 보니

“좀 과장하면 백사장에서 모래 한 삽 뜨는 기분이죠. 낙엽은 치우면 금세 또 떨어져요.”

20일 오전 5시 서울 종로구의 창경궁 옆 돌담길. 형광색 작업복 차림의 종로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2명이 분주히 빗질을 했다. 밤사이 거리에 소복이 쌓인 낙엽을 치우기 위해서다.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본지 유대근(왼쪽) 기자가 20일 새벽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서울 종로구 창경궁 옆 가로수길에서 밤새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다.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본지 유대근(왼쪽) 기자가 20일 새벽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서울 종로구 창경궁 옆 가로수길에서 밤새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다.
미화원 100여명이 투입돼 직장인이 출근을 시작하는 오전 7~8시쯤 1차 청소를 마쳐야 한다. 30년차 환경미화원 이치헌(60)씨는 “낙엽이 쏟아지는 11월부터 12월 초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라고 말했다. 낙엽이 바람에 날려 주행 중인 차창을 때리거나 행인이 밟고 넘어질 위험이 있어 쌓일 틈 없이 치워야 한다. 기자도 겨울 문턱에 벌이는 ‘낙엽과의 전쟁’을 체험하기 위해 미화원 복장에 빗자루, 쓰레받기를 들고 종로구 와룡동, 청운동, 인사동 거리를 돌았다. 이날 서울 기온은 올가을 이후 가장 추운 영하 3도까지 떨어졌다. 오전 5시 무렵 창경궁로는 플라타너스 낙엽이 바닥에 가득 쌓여 운치가 있었다. ‘낙엽 밭’을 밟을 때의 서걱거림이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지날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하지만 빗질을 시작한 지 20분도 안 돼 낭만은 사라졌다. 대나무 살로 만든 특수 빗자루로 낙엽을 쉴 새 없이 쓸어 모으고 나서 포대에 주워담는 일을 반복하자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미화원인 양행술(50)씨는 “언뜻 눈 치우는 일이 더 고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귀띔했다. 눈은 제설 차량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집 앞 눈은 주인이 치우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되면서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낙엽 제거는 오롯이 미화원의 몫이다. 이씨는 “가끔 송풍기 바람을 이용해 낙엽을 모으지만 미세먼지가 많이 날려 비 오는 날에만 간간이 쓴다”면서 “낙엽 청소에는 빗질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로수뿐 아니라 인근 인왕산과 북한산의 낙엽도 가을 바람을 타고 길거리로 밀려온다. 고동석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계장은 “낙엽을 다 치우기도 어렵고 ‘가을에는 낙엽 밟는 것이 낭만’이라는 시민들의 생각도 있어 말끔히 없애지 않고 일부를 남겨둔다”고 말했다.

청소 시작 1시간 만에 200ℓ짜리 포대 15자루가 가득 찼다. 고 계장은 “오전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종로구 관내 23.91㎢을 청소하면 매일 낙엽 1500자루가 수거된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걷히는 낙엽의 양은 집계조차 안 되지만 종로구에서만 매일 75t의 낙엽이 수거된다. 가을 내내 종로에서 걷히는 낙엽은 1100~1500t에 이른다.

가을철에는 낙엽·낙과와 관련된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고 계장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젖은 낙엽을 밟아 미끄러졌다거나 떨어진 은행 때문에 악취가 진동한다는 민원 등이 많이 접수된다”고 전했다.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은행을 집중적으로 따 450㎏가량을 인근 노인복지관 등에 전달하기도 했다.

낙엽은 다른 쓰레기와 달리 귀한 대접을 받는다. 거리에서 모은 낙엽 포대는 쓰레기 ‘적환장’에 집결됐다가 구청과 협약을 맺은 수도권의 배추·사과 농가 등에 비료로 배달된다. 또 송파구는 수거한 은행나뭇잎을 강원 춘천시 남이섬에 깔아 ‘송파 은행길’을 조성했고, 충북 제천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이 주워온 낙엽을 ㎏당 300원쯤에 사들이는 ‘낙엽 수매제’도 시행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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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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