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안도현 시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961년 경북 예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 아양초등학교와 경북 사범대 부속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 등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줄곧 대구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문예반 ‘태동기 문학동인회’에 가입, 사실상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80년 전북 익산소재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한 그는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낙동강’으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당선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5년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에 들어선 그는 전교조 가입 이유로 4년만에 해직당했다. 이후 1994년 전북 장수군 산서고에 복직됐으나 3년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시인으로 돌아섰다.
이후 안 시인은 김백겸, 고형렬, 김경비, 고운기 등과 함께 ‘시힘’ 동인 활동을 벌이며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웠다.
이런 노력의 1996년 1월 시와 시학 젊은 신인상, 1998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노작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타기도 했다.
현재는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당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당시 청와대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유실된 안중근 의사 유묵의 소재와 관련,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자 지난 7월 소설가 박범신, 시인 정호승씨 등 문인 200여명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안 시인은 7일 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공표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아 냈지만, 후보자 비방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받아 벌금 100만원의 선고가 유예됐다.
연합뉴스
1961년 경북 예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 아양초등학교와 경북 사범대 부속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 등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줄곧 대구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문예반 ‘태동기 문학동인회’에 가입, 사실상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80년 전북 익산소재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한 그는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낙동강’으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당선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5년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에 들어선 그는 전교조 가입 이유로 4년만에 해직당했다. 이후 1994년 전북 장수군 산서고에 복직됐으나 3년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시인으로 돌아섰다.
이후 안 시인은 김백겸, 고형렬, 김경비, 고운기 등과 함께 ‘시힘’ 동인 활동을 벌이며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웠다.
이런 노력의 1996년 1월 시와 시학 젊은 신인상, 1998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노작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타기도 했다.
현재는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당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당시 청와대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유실된 안중근 의사 유묵의 소재와 관련,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자 지난 7월 소설가 박범신, 시인 정호승씨 등 문인 200여명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안 시인은 7일 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공표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아 냈지만, 후보자 비방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받아 벌금 100만원의 선고가 유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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