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초안’은 3개월 전 파기…FINA도 아는 사실최종본 토대로 FINA 총회에서 광주 합의 선정
19일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최종 선정된 순간 광주시 유치 대표단은 웃을 수만은 없었다.대회 개최 선정에 가장 중요한 최종 프리젠테이션에 앞서 광주시가 세계수영연맹(FINA)에 제출한 유치 의향서 초안에 위조된 문서가 포함됐다는 소식이 본국에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힘든 일정에도 최종 관문인 프리젠테이션을 불과 5시간 앞두고 난데없이 날아든 ‘사인 위조’ 보도에 현지에서 유치 활동을 벌인 유치단 100여명은 ‘멘붕’에 빠졌다.
유치 의향서 초안이 FINA에 제출된 시기는 지난 4월 2일. 당시 초안은 PDF 파일 형식으로 제출됐고 김황식 전 총리와 최광식 문화체육부 전 장관의 정부 보증 내용을 담은 문서가 첨부됐다.
문제는 정부 보증 문서에 들어간 김 전 총리와 최 전 장관의 사인이 위조됐다는 것이다.
지난 4월 29∼5월 1일 FINA 현지실사단이 정홍원 국무총리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위조된 서류가 발견됐고 정부는 곧바로 광주시에 고발 방침을 통보했다.
광주시는 초안에 첨부된 정부 보증 서류를 파기하고 대신 정부의 동의를 얻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문서(중간본, 최종본)로 대체했다.
대회 유치에 지장을 우려한 광주시는 유치 확정 때까지 고발을 미뤄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3개월간 침묵을 지키다 개최지 결정 당일 ‘사인 위조’ 사실과 함께 고발 방침을 확인하는 초강수를 뒀다.
광주시는 지난 4월 의향서 초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시정을 요구했던 정부가 개최지 선정에 불과 몇 시간을 앞둔 시점에서 공개하고 고발 방침을 알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개최지 선정 이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시장을 향해 와전된, 오도된, 음해된 사실을 배포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정부에서 실무자 실수를 지적해 이를 바로잡았고, 이후 제출한 유치 제안서 중간본·최종본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날린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국제 스포츠 대회에 중앙정부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다. 예산 지원을 무기로 지자체장의 ‘치적쌓기’를 견제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강 시장은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 수영 경기장을 활용하는 데다 일부 임시 시설을 짓더라도 10∼2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는 관광객 유치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는 문제”라며 ‘적자 대회’로 규정짓는 정부의 시각에 불만을 나타냈다.
강 시장은 “정부가 수영대회에 관심이 없다는 식이고, 지원할 생각도 없다고 한다”며 서운함을 드러내고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정부는 자동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석 유치위 사무총장도 “정식 문서도 아닌 PDF 파일로 보낸 것이고 나중에 발견해 원상 복구까지 했다”며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고 FINA 실사단 면담 자리에서 정홍원 총리가 적극 지원 의사를 밝혀 문제가 끝난 것으로 알았는데 뒤늦게 문제가 불거져 당혹스럽다”고 했다.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할 때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광주시의 사기도 크게 가라앉았다.
2009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지 선정 당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치단이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번 세계수영대회 개최지 발표 당일에도 ‘문서 위조 의혹’으로 분위기가 가라앉고 말았다.
광주시의 한 관계자는 “하계유니버시아드에 이어 수영대회 유치 때도 본국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리는 게 참 알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