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소송서 ‘유사 징벌적 손해배상’ 첫 판결

저작권 소송서 ‘유사 징벌적 손해배상’ 첫 판결

입력 2013-05-26 00:00
수정 2013-05-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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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그 행위가 없었을 경우의 재산 상태와 행위가 가해진 현재 재산 상태의 차이로 산정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

이같은 소위 ‘차액설’은 불법 행위가 벌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부동산 가격을 속여 시가보다 비싼 값에 판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손해는 거래가 이뤄진 당시의 시가와 실제 사고 판 가격 차이가 된다.

나중에 소송을 제기한 뒤 시가가 올라 사고 판 가격을 웃돌더라도 배상액 산정상 ‘현재’는 불법 행위가 이뤄진 과거를 의미한다.

그런데 저작권 소송 등에 한해 특별히 대법원의 ‘차액설’을 수정·적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판결이 최근 나왔다.

프로그램을 무단 사용한 과거 시점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정하는 대신 영구 사용한 것과 다름 없이 무거운 책임을 지우자는 취지여서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4부(이균용 부장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제조사 7곳이 국내 중소기업 2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회사 사무실 컴퓨터에 불법 복제한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한 피고들은 정품 수십개를 정가에 구입해 사용한 것과 같은 금액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소송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모두 삭제한 피고들은 이를 다시 사용하고 싶으면 새로 정품을 사야 한다. 결국 처음부터 법을 지킨 것보다 2배나 되는 부담을 지게 된 셈이다.

이번 판결은 최근 논의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불법 복제가 만연한 와중에 피해자 손해 회복과 별도의 제재·예방 효과를 함께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법률과 ‘차액설’ 등 판례의 커다란 틀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입법 노력이 필요한 본격적인 징벌적 손해배상과는 차이가 있다.

앞으로 법원이 이같은 입장을 일반화한다면 불법 복제를 줄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관계자는 “기존 판례와의 연속성 속에 ‘한 걸음을 더 내디딘 정도’지만, 저작권 소송에서 명시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효과를 꾀한 첫 판결”이라고 밝혔다.

최승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그동안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손해배상액이 지나치게 적다는 주장이 있었고, 징벌적 배상제 도입까지 논의해 왔다”며 “재판부가 이런 사정을 감안해 판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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