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분향소에 시민이 직접 제작…”진심 담아 더 예뻐”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에는 다른 농성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쌍용차 정리해고 우리 모두의 문제, 함께 살자’라는 글자가 형형색색의 뜨개질과 바느질로 수놓아진 가로 3m, 세로 0.9m 크기의 플래카드다.
언제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종일 경찰이 상주하는 등 긴장이 흐르는 이곳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대한문 앞을 지나던 허은지(33·주부)씨는 26일 “농성장 옆에 예쁜 천들이 있어 뭔가 봤더니 시위에서 많이 사용하는 플래카드였다”며 “쌍용차 분향소하면 해고노동자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는데 희망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말했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 뜨개질 플래카드는 지난 3월 신유아 문화연대 여성활동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신씨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1년 넘게 쌍용차 분향소에서 선전전을 해왔지만 시민들과 소통이 쉽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기존의 방식과 달리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즐기는 선전전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게 바로 뜨개질 플래카드였다.
그녀는 지난 3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천을 가져와 대한문 분향소에서 함께 뜨개질하며 고민을 나누자”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에게 제안했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약속한 날이 되자 무려 50여명의 시민이 각자 천을 들고 모여들었다.
시민운동가도 있었지만 홍대 앞에서 뜨개질로 인형을 만들어 파는 청년, 공예작가, 뜨개질이 취미라는 평범한 시민 등 다양했다.
한 50대 여성은 필요한 천을 기증하겠다며 가로·세로 30cm 크기의 천 200장을 들고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시민이 반나절을 꼬박 들여 함께 뜨개질을 하고 각각의 작품을 이어붙여 뜨개질 플래카드를 완성했지만 이 플래카드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서울 중구청이 분향소를 불시에 철거하면서 뜯기고 말았다.
그러나 신씨는 지난달 23일 다시 40여명의 사람들을 모아 뜨개질을 했고 그렇게 재탄생한 대형 플래카드를 농성장 한쪽에 내걸었다.
신씨는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시 사람들을 모아 플래카드를 만들었다”며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과 관광객이 늘면서 최근에는 농성장 분위기도 더 밝아졌다”고 웃었다.
그녀는 현재 대한문 분향소 한쪽에 버려진 나무 조각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고 상추·고추 등을 심을 텃밭도 만드는 ‘농성정원’ 행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신씨는 뜨개질 플래카드, 농성정원 등의 연대활동이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보고 골든브릿지투자증권과 재능교육 농성장에도 같은 활동을 제안할 계획이다.
”어떤 분들은 ‘구청에서 만든 화단보다 뜨개질 플래카드가 훨씬 더 예쁘고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뜨개질엔 더 많은 사람의 진심이 담겨서가 아닐까요.”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