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참다운 부부관계 설정 의사 없어”
2000년대 초반 서울의 한 명문대를 함께 다니며 친해진 A(37·여)씨와 B(36)씨.각자 자취하던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무렵이 되자 집값을 아끼기 위해 동거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절친했고 A씨 여동생도 함께 살기로 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들은 2006년부터 3년 동안 수차례 이사하면서도 전입신고를 통해 주민등록을 같은 곳에 뒀다.
A씨와 B씨가 혼인 신고까지 하게 된 것은 4년 전이다.
B씨가 회사에 정식 입사하기 전 참가한 연수에서 한 임원으로부터 주민등록상 동거하는 A씨와 무슨 관계인지 질문받으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가 ‘단순한 친구’라 대답하자 임원은 정식 입사일까지 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처럼 얘기했다.
취업에 실패할까봐 걱정에 빠진 B씨는 A씨에게 혼인 신고를 하자고 요구했고, A씨는 자신 때문에 친구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허락했다.
엉겁결에 가짜 결혼을 한 것이다.
뒤늦게 ‘인륜지대사’를 너무 섣부르게 결정했다고 후회한 A씨는 결국 B씨를 상대로 혼인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비록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하나 정신적·육체적 결합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없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혼인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와 B씨는 참다운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며 “단지 A씨가 B씨의 취업을 도우려는 방편으로 혼인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B씨는 가짜 결혼까지 하며 입사한 회사를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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