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양아들 술취해 “빚 갚아달라” 집에 불

50대 양아들 술취해 “빚 갚아달라” 집에 불

입력 2013-05-06 00:00
수정 2013-05-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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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던 80대 노모 “꿈이었으면…” 눈물

부모 없는 형제를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낸 80대 노인이 양아들이 낸 불 때문에 잿더미에 앉고 말았다. 노인은 “모든 일이 꿈만 같다”며 눈물을 쏟았다.

젊은 시절 가방공장에 다니던 윤모(80)씨는 “고아 형제가 있는데 데려다 키워보지 않겠느냐”는 직장 동료의 말에 초등학생이던 박모씨 형제를 데려왔다.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봤다. 양아들 둘을 키우는 동안 혼기가 훌쩍 지나갔다.

두 양아들은 커서 독립했고 각자 가정을 꾸렸다. 윤씨는 변변한 노후대책도 없이 폐지를 주워 겨우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잘 키웠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실제로 효성이 지극한 첫째 양아들은 돈을 모아 양어머니의 전세방을 마련해줬다.

소식이 끊겼던 둘째 양아들(54)이 돌아온 건 4년 전. 윤씨에게 대뜸 “도박에 빠져 아내와 딸과 헤어졌다.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며칠에 한 번씩 술에 취해 양어머니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갔다. 둘이 살갑게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황은 지난 3월 23일 돌변했다. 둘째 양아들이 “도박빚 800만원을 갚아달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자 흉기를 자기 목에 대고 죽어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주병을 던지며 위협도 했다.

깜짝 놀란 윤씨는 맨발로 뛰어가 이웃집에 몸을 숨겼다. 술에 취한 양아들은 라이터로 이불에 불을 붙였다.

윤씨의 서울 도봉구 보금자리는 잿더미가 됐고 양아들은 현주건조물방화죄로 구속기소됐다.

윤씨도 망연자실했다. 당장 갈 곳이 없는데 복구비용은 1000만원이 넘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도봉경찰서는 서울 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에서 화재피해를 당한 독거노인의 집 복구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돼 도움을 받았다.

센터는 생계비 100만원을 지원했고 근처 교회는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재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집 주인이 최소 3년간 윤씨를 쫓아내지 못하도록 약정서도 받았다. 집은 겨우 복구됐지만 윤씨의 상처 입은 마음은 아물지 않았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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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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