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공장서 염산 200t 누출… 불산 악몽 가시기도 전에 또 안전불감
폴리실리콘 제조 공장에서 지난 12일 염산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업체 측은 119 등 관계 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은 채 3시간 넘게 숨겼고, 첫 신고를 받은 해당 면사무소와 경북 상주시는 엇박자를 내며 사고전파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누출된 염산이 증발해 공기 중으로 수백m 퍼진 3시간 30여분이 지나서야 초동조치를 시작했다. 자칫 지난해 발생한 구미 불산 유출사고의 악몽이 재연될 뻔했다.지난 12일 한 소방대원이 염산 누출 사고 후 화학반응에 의해 기체가 된 염화수소가스가 퍼져 있는 경북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 내에서 사고 처리에 나서고 있다. 작은 사진은 염산탱크에서 염산이 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장면.
상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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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찰 및 소방서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7시 30분쯤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청리마공공단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의 염산 탱크(475t 규모) 배관에 금이 가면서 염산 200t 정도가 새어 나왔다. 흘러내린 염산이 눈(물)과 섞여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기체 상태인 염화수소로 변해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마공리 주민 김원용(63)씨는 “처음 집에서 나와 보니 온 마을이 안개가 낀 것처럼 온통 희뿌옜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사고 탱크 안에는 산도 35%의 염산이 저장돼 있었으며, 불산(14t)·황산(14t)·질산(30t) 등 유독성 화학물질이 다수 보관돼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현장 수습을 이유로 소방서나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1㎞ 떨어진 마을에 사는 김모(57)씨가 흰 연기를 보고 오전 10시 30분쯤 청리면사무소에 첫 신고를 했다. 그러나 대응시스템은 엉망이었다. 청리면사무소 관계자는 “대응일지를 보면 10시 30분이 조금 지나 신고접수가 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면서 “신고를 받고 곧바로 시청 재난과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주시 재난과 측은 “공식일지를 봐도 면사무소에서 보고된 신고내용은 없다”면서 “우리는 오전 11시 11분쯤 소방서에서 연락이 와 처음 알았다”고 반박했다. 상주시 또는 청리면사무소 중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결국 최초 신고자 김씨는 오전 11시 1분 소방서에 재차 사고 신고를 했다. 7분 뒤 청리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초등조치에 들어갔다. 상주시는 그제서야 공장 인근 마공리 주민들에게 “사고가 났으니 외출을 삼가라. 문을 꼭 닫고 있으라”는 주의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주민은 방송을 듣지 못했다. 상주시는 언론에 “인근 마을주민 760여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뒤늦게 “대피 준비명령이었고 큰 피해가 없는 것 같아 대피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인명피해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사고 현장에는 외부인과 차량 출입이 전면통제된 채 염화수소 방제작업이 벌어졌다. 환경 당국은 탱크와 방호벽(1m) 사이로 유출된 염산을 저류조로 흘려 보냈지만 배관이 얼어붙어 방제에 어려움을 겪었다.당국은 염산이 공장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으며 인근 마을의 대기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오염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동파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일어난 인재(人災)란 지적이 나온다. 공장 측은 최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탱크 배관을 헝겊으로 감싸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은 태양광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곳으로 2010년 8월 문을 열었으나 불황으로 지난해 7월 가동이 중단됐다.
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2013-01-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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