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합현장’ 침묵행진…고은 시인 “무효! 그 길의 첫걸음”

‘병합현장’ 침묵행진…고은 시인 “무효! 그 길의 첫걸음”

입력 2010-08-29 00:00
수정 2010-08-2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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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도쿄를 본다/ (…) 불가피한 이웃이다/ (…) 불가피한 이웃이란/ 불가피한 열전이 아니라/ 불가피한 냉전이 아니라/ 불가피한 우정/ 불가피한 화목이 있어야 한다/ (…) 무효!/ 이로부터 우정의 천년이 있다/ 앞이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이 있다/ 오늘 그 길의 첫걸음이 여기 있다”

 29일 오전 서울 충무로 세종호텔 로비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는 고은 시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거와 같은 100년이 한국과 일본에 다시는 없어야 하며,‘강제병합 무효’ 선언에 바탕을 둔 우정과 화목의 1천 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시가 고은 시인의 목소리로 흐르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무효!/ 이것이 100년의 말이다/ 말은 길이다 세계이다// 병합 무효!”곧이어 시인의 낭송이 끝나자 한.일 지식인들은 박수를 치며 한국사의 가장 애통한 단면을 보여주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슬픈 마음으로 기념했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100년이 되는 이날 모임에는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아라이 신이치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등 지식인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앞서 이날 오전 10시 을사늑약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에 모여 늑약이 이뤄진 방과 고종황제의 집무실,고종이 각국 정상에게 보낸 친서의 사본 등을 둘러봤다.

 역사학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이 불타 고종이 중명전으로 옮겨간 일부터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일,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고종의 독립 시도가 불발로 그쳤던 이유 등을 동료 학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이들은 우산을 쓰고 호우주의보 속에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으로 말없이 걸어나갔다.

 비 때문에 일부 구간은 자동차를 이용한 이날의 침묵행진은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현장인 서울 남산의 옛 통감부 관저 터까지 이어졌다.

 침묵 속에 행진한 이유는 을사늑약과 한일강제병합이라는 두 조약이 설명할 수도 없는 유례없는 역사로,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고은 시인은 “마침 오늘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이 100년전 오늘 우리 한국인 전체가 흘린 눈물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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