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산상봉 연기]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주도권 노린 ‘전략적 떼쓰기’

[北 이산상봉 연기]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주도권 노린 ‘전략적 떼쓰기’

입력 2013-09-23 00:00
수정 2013-09-2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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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노림수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나흘 남겨두고 지난 21일 돌연 연기를 통보한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남북관계 주도권을 틀어쥐어야 할 필요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60여년 기다렸는데…”
“60여년 기다렸는데…”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꿈에 부풀었던 홍신자(83) 할머니가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로 상봉행사가 연기된 사실이 안타까운 듯 22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상봉행사와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 연기 방침을 밝히며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다. 남측이 이른바 ‘진보민주인사’들을 상대로 ‘마녀사냥극’을 벌이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는 정상적인 대화와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 의원 사건을 내세운 이유와 관련,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판을 흔들기 위한 ‘끼워넣기식 명분’일 뿐 실제 속내는 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구성원들을 두둔하며 최소한의 연대감, 유대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상봉 행사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본질적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실리를 중요시하는 집단”이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협의 진전을 압박하는 문제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 의원 문제를 거론하며 속내를 감춘 것은 관광 재개 등 실리를 위해 이산가족 상봉 약속을 깼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실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면서 “첫 번째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도저히 묵을 수 없는 숙소를 제안한 것이고 두 번째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상봉 대상자 명단을 모두 교환할 때까지 뜸을 들이다 상봉 행사 직전에야 연기를 통보한 것 역시 고도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찌감치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한 달 정도 뜸을 들여가며 개성공단이 정착되는 것을 본 뒤 반인도적이고 파렴치한 전략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실리를 챙긴 뒤 금강산 관광에 대한 남쪽의 태도를 지켜보며 저울질하다 아쉬울 게 없다는 판단이 들자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다만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한다면 우리 측이 제의한 대로 다음 달 2일 관련 실무회담을 갖고 서로의 입장을 들어본 뒤 판을 깨도 늦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의문은 여전하다. 게다가 이산가족 상봉 연기는 남쪽의 대북 여론을 더욱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멀어지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북한 내 강경파가 국면 전환을 시도, 정책에 혼선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의원 사건을 계기로 북한 강경파가 목소리를 다시 높였을 공산도 적지 않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끝난 뒤 얼마든지 제대로 된 명분을 쥐고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북한의 정책 결정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3-09-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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