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안당국이 1990년대 말 1년 반 동안 교화소(교도소) 한 곳에서만 200∼300명의 수감자를 비밀처형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나왔다.
2009년 입국한 탈북자 조철민(가명·55) 씨는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준비위’가 1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주최한 북한인권 침해사례(비밀처형) 발표회에서 “1998년 5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교화소 한 곳에서만 비밀처형된 사람들이 200∼300명이 넘었다”며 비밀처형된 사람들의 시체를 자신이 직접 화장터로 날랐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1997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 전거리교화소에 수용돼 수감자를 관리하는 농산반장 임무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교화소 당국은 1998년 5월 어느 날 나와 임업반장 2명을 불러내 안전과 담화실에서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머리에 병든 자들은 쓸어버리라’라는 내용의 김정일 ‘친필지시’를 보여줬다”라며 “이어 교화소 안에서 목격한 일을 사회에 나가 발설하면 처형당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그 후 전 씨 등 2명은 교화소 당국이 한 달에 2∼3회씩, 한 번에 5∼7명, 많게는 10명까지 수감자를 비밀처형하는 현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비밀처형이 끝나면 시체를 처리하곤 했다는 것이다.
전 씨가 목격했다고 주장한 대규모 비밀처형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있었던 대규모 숙청사건인 이른바 ‘심화조사건’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북한의 비밀처형과 공개처형은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이 계속 비밀처형을 일삼는다면 국제사회에 동참할 기회는 더 멀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북한 비밀처형 고발회견
1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의 비밀처형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가운데 모자이크한 사람이 비밀처형을 목격한 탈북자다. 좌우로는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준비위원장,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 사무총장.
연합뉴스
1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의 비밀처형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가운데 모자이크한 사람이 비밀처형을 목격한 탈북자다. 좌우로는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준비위원장,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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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입국한 탈북자 조철민(가명·55) 씨는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준비위’가 1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주최한 북한인권 침해사례(비밀처형) 발표회에서 “1998년 5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교화소 한 곳에서만 비밀처형된 사람들이 200∼300명이 넘었다”며 비밀처형된 사람들의 시체를 자신이 직접 화장터로 날랐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1997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 전거리교화소에 수용돼 수감자를 관리하는 농산반장 임무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교화소 당국은 1998년 5월 어느 날 나와 임업반장 2명을 불러내 안전과 담화실에서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머리에 병든 자들은 쓸어버리라’라는 내용의 김정일 ‘친필지시’를 보여줬다”라며 “이어 교화소 안에서 목격한 일을 사회에 나가 발설하면 처형당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그 후 전 씨 등 2명은 교화소 당국이 한 달에 2∼3회씩, 한 번에 5∼7명, 많게는 10명까지 수감자를 비밀처형하는 현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비밀처형이 끝나면 시체를 처리하곤 했다는 것이다.
전 씨가 목격했다고 주장한 대규모 비밀처형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있었던 대규모 숙청사건인 이른바 ‘심화조사건’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북한의 비밀처형과 공개처형은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이 계속 비밀처형을 일삼는다면 국제사회에 동참할 기회는 더 멀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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