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SCM ‘비핵화’ 왜 빠졌나
완전 비핵화→ 핵개발 지연 ‘변화’“美, 군사·경제 제재 효능에 방점”
韓, 자체 핵무장 주장 득세할 수도
국제사회 제재 전 美 동의 않을 듯
김용현(왼쪽)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3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6·25 참전 기념비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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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국방장관이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그동안 양국이 북한에 꾸준히 요구해 온 ‘비핵화’라는 단어가 9년 만에 빠진 데는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능력을 고려한 현실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실현이 어렵게 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 위협 억제’로 초점을 옮기자는 취지라는 해석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발표한 SCM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조율해 나가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노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5차 SCM 공동성명에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대화와 외교를 추구하는 노력을 위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었다. 2016년 48차부터 지난해 55차까지 포함됐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대신 ‘핵 개발을 지연시킨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올해 들어 미국 정계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 또는 현실론을 읽을 수 있는 기류가 이어졌다. 미라랩 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3월 대담에서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의 조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중간 조치’란 완전한 비핵화 전에 북한의 핵 동결 혹은 감축에 상응해 대북 제재 완화 등 대가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 박 전 국무부 대북고위관리도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최근 대선을 앞둔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강에 ‘비핵화’ 목표를 담지 않았다. 실현불가한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북핵 위협을 억제하는 데 무게추를 옮긴 셈이다. 다만 장호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던 지난 5월 “미국 고위층 상당수가 중간 단계라는 건 없다고 확인했으니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결과는 없을 거란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 조야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합의점이 있는 것 같고, 따라서 비핵화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비핵화를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대화 창구나 군사·경제적으로 억지력을 높여 제재의 효능을 높이느냐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입장과 별개로 한미동맹의 성과를 결산하고 내년 안보 협력 방향 등을 논의하는 SCM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빠진 데 대해 국방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견고히 견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을 인정하면 우리는 핵 위협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이라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도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한편으로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 및 미군 전술핵의 재배치 등의 주장이 다시 득세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통상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와 동일선상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북핵을 차츰 현실로 수용한다면 우리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없단 이유에서다.
특히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자체 핵무장론이 더욱 커질 것으로도 전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 관계를 거래 우선으로 보는 만큼 확장억제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고, 주한미군 주둔 문제나 방위비 등을 트집 잡아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주미대사관에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자체 핵무장 및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1994년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 이후 30년이 지나 돌아보니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은 오판이었음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한미 전문가 정치권에서 그런 목소리가 커진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부의) 취지는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까지 가지 않은 상태에서 최선의 북핵 위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전에 당장 미국이 이를 동의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자체 핵무장 없이도 북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억제·대응할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24-11-01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