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로 분류되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5일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개딸’)로부터 받은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개딸’ 도 넘는 행위는 여전히 논란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상민이 받은 응원 문자’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개딸’)가 비명(비이재명)계 이상민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답변을 캡처한 것이다. 게시글 작성자는 이 의원에게 다섯 줄로 이런 문자를 보냈다. “이상민님 응원해요♡ / 개딸은 무시해요! / 새로 창당해도 /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 야권의 희망이십니다.” 언뜻 보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을 반대해왔던 이 의원의 소신 행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고, 그 답장을 받은 ‘개딸’은 “세로로 읽어 보세요”라며 수박이 썰어져 있는 사진을 함께 보냈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속성에 빗대 당내 비명계 의원들을 의미하는 별칭이고, 앞선 메시지 각 행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이XXX야’라는 욕설이 된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지난 27일 기각됐고 민주당의 이 대표 체제가 공고화됐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를 엄호해온 ‘개딸’들의 선을 넘은 행위가 여전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욕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뿐 아니라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인터넷에는 특정 의원을 겨냥한 살해·협박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별·연령대 확장하며 李 엄호 앞장
정당정치 아웃사이더 李 띄우기 나서개딸은 애초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에도 고마운 존재였다. 지난해 3·9 대선 즈음 정치권에서 국민의힘의 2030 남성 구애에 맞서 이 대표로 결집한 2030여성들이 스스로 ‘개혁의딸’로 칭하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성별·연령대에서 보여준 강성 이재명 팬덤을 상징하는 말로 확장됐다. 이 대표가 ‘당원이 주인인 민주당’을 외쳐오면서 팬덤은 더 단단히 결집해 이 대표를 엄호했다. 그 결과는 심각한 당 내홍으로 이어졌다.
우리 정치사에서 팬덤 정치가 본격화된 것은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 ‘노사모’가 꼽힌다. 국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시작한 노사모는 당시 지역주의에 비판적인 개혁 성향으로 현재 50~60대가 된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세대가 주도했으며 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 팬클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사모’,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한 ‘문팬’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정치 팬덤은 미국 공화당의 ‘티파티’나 민주당의 ‘무브온’처럼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을 지향하기보다는 특정 인물을 추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당내 비명계를 공격하는 개딸의 예에서 보듯 정당 내에서 더 큰 분열과 적대감을 만들어내고 당내 경쟁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특징이 있다.
이재명 팬덤이 기존의 박근혜·문재인 팬덤과 다른 점은 정당 정치가 기득권과 특권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당 정치의 ‘아웃사이더’로서 이 대표를 띄운다는 점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를 혐오와 적대의 위험한 도구로 효과적으로 활용한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익명의 적극적 시민층 광범위 형성
강성 팬덤정치 쉽게 사라지지 않을듯정치인들에게 팬덤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 대표는 개딸들로 인해 당 분열이 가속화되자 몇 차례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위기에 몰린 지난 22일 침묵을 깨고 “민주당의 부족함을 질책하고 고쳐달라”는 호소와 함께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고 다짐하는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개딸들의 결집을 호소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팬덤 지지자들은 정치의 자율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에 일상적으로 관여하고 정치를 변화시키고 싶어하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제압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따르지 않는 정치가는 반개혁적으로 몰아간다.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팬덤정치는 당분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익명의 적극적 시민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기성 체제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했지만 영향력을 갖게 된 이후에는 ‘적대 세력’이나 ‘이적 세력’의 도전을 분쇄하는 것이 이들에겐 중요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졌다고 단정해 온갖 문자폭탄을 던지는 것은 인민재판이나 홍위병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라며 “정치의 본질을 아군과 적군의 싸움으로 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가진 다원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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