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어젠다 ‘기본소득’ 보수 구원투수가 던졌다

진보의 어젠다 ‘기본소득’ 보수 구원투수가 던졌다

입력 2020-06-03 22:42
수정 2020-06-0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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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통합 비대위원장 “물질적 자유 극대화가 목표”

靑 “현재로서는 기본소득 아직 일러”
재원 고려해 청년에 우선 적용 전망
“좋은 일 될 것” “유사 정의당” 갈려

미래통합당 김종인(얼굴) 비상대책위원장이 진보 진영의 어젠다였던 기본소득 문제를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아직은 총선 참패에 따른 당 혁신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정의당 등 진보 정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본소득 논의를 피할 이유가 없어 어떤 형태로든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 국민이 긴급재난지원금을 한 차례 수령한 경험이 있어 아이디어 차원에만 머물던 과거와 달리 정서적·행정적 토대도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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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3일 초선 의원 공부 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 “보수가 지향했던 ‘법 앞에 평등’ 같은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하느냐가 정치의 기본 목표”라고 밝혔다. 물질적 자유의 의미에 대해 김 위원장은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나”라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일정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이념을 풀어서 설명한 셈이다.

●“극우 보수 이미지 터는 데 상당한 효과”

다만 재원 문제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공감대가 있는 것과 가능하게 하는 재원 확보는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재원, 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조율 등 선결 과제들이 산적한 만큼 청년층에 우선 적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현아 비대위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김 위원장이) 분명 청년에게 관심이 많다는 건 답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좀더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청와대는 일단 “현재로서는 이르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월 생활비를 주는 것인데, 시행 사례도 많지 않다”면서 “재원 등에 대해 상당 기간 토론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본격적으로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金 행적 고려하면 진정성 있는 제안”

기본소득 담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통합당 혁신과 대여 협상을 위한 ‘구호’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과 실현 의지가 강하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통합당 관계자는 “도입 여부를 떠나 우리 당이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극우보수’ 이미지를 털어내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온 김 위원장의 행적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수사라기보다는 비대위원장으로서의 구상을 진정성 있게 얘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당내에선 초·재선들이 강하게 지지하는 반면 중진들은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산발적으로 쏟아진 기본소득 어젠다를 우리가 구체적으로 정비해 내놓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중진 의원은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 국민 관심을 끌겠다고 현실화 방안도 없이 담론만 던지는 건 무책임할뿐더러 추후 당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3선 장제원 의원도 전날 “유사 민주당, 심지어 유사 정의당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20-06-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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