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평가…“‘전략적 지위’ 거론 등 핵언급 수위 강화”
“韓 ‘당사자’ 역할 거론한 것은 남북미 3자틀 염두 둔 것일수도”전문가들은 미국의 ‘연내 결단’을 요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대해 미국의 이른바 ‘빅딜’ 제안을 재차 거부하며 공을 다시 미국에 넘긴 것으로 해석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때 제시한대로 ‘영변 핵시설 폐기-민생경제 관련 제재 해제’ 교환을 필두로 하는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며 ‘연내’라는 시한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13일 “김 위원장은 대화와 협상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미국식 빅딜안과 그것에 근거한 중재안은 받기 어렵다고 밝힌 것”이라며 “한국의 ‘당사자’ 역할을 강조한 것은 남북미 3자 틀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김 위원장이 ‘판’을 깬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며 “충격적인 말이 나오지 않고 (미국이 압박을 고수할 경우 갈 수 있다고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과 관련해서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쁘지 않은 점”이라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양쪽 이해관계가 부합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조건 하에서 ‘조건부 3차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밝혔다”며 “북미협상은 그대로 여지를 갖고 있되 지금과 같은 미국의 계산법으로는 협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최후통첩’식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대북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제재가 쉽게 해제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한 것처럼 말했다”며 “전반적으로 미국에 공을 넘기며 태도를 전환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 실장은 “제재 해제가 가장 급하고 실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지만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 읽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 기조를 강하게 비판하며 ‘당사자’ 역할을 촉구한 것에 대해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계속 (대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창구로 한국을 붙잡고 있겠다는 의중이 읽혔다”고 평가했다.
핵 관련 언급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핵 문제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최근 연설에서 하지 않았던 ‘전략적 지위’라는 말이 나왔고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이라는 표현 등 이전에 비해 수위가 높은 표현이 있었다”며 “연설 전반부에 미국에 대해 톤을 높이고 뒤에 가서는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식으로 톤을 낮췄다”고 분석했다.
자력갱생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길’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새로운 길’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으나,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본다”며 “한마디로 외세나 외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경제를 포함해 국가발전을 이루어내겠다는 대내적인 메시지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김 위원장이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과 협조의 유대를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외교적 다변화와 확장도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29년만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한 데 대해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정치적 의미를 보자면 김정은이 통치 역사에서 한 장(章)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연설을 노동당의 당면한 지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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