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김정은·트럼프 사이서 북미관계 정상화 ‘빅딜’ 모색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2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8. 03. 21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격인 3국의 정상, 즉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여 통 큰 담판을 지어보자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UAE 순방을 하루 앞둔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남북, 북미회담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 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제기한 ‘3자 회담’ 구상의 핵심은 모처럼 조성된 ‘한반도 데탕트’의 기류를 살려 한반도 문제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으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큰 틀의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으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고 구속력있는 결과물로 이끌어내려면 남북미 정상이 한 테이블에 모여 공동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게 긴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단순히 북미 정상을 회담장으로 끌어내는 ‘중재자’를 넘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출구를 확보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지만 우리는 분명한 구상을 가지고 있고 또 남북미 정상간 합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있다”며 “준비위원회가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담대하게 준비해주기 바란다”고 힘을 줬다.
이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목표와 비전으로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관계 발전 ▲북미 또는 남북미간 경제협력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일괄 매듭’을 짓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3자회담 제안의 초점은 ‘미국의 보장’이라는 데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결정적 매듭에 해당하는 북미관계 정상화, 나아가 북미간 경제협력까지 끌어내려면 키를 쥔 미국의 ‘확약’과 합의 이행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목표와 비전을 미국 측과 공유하고 충분히 협의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남북 사이의 합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며 “미국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꿔 말해 북미간 관계 정상화와 경제협력이라는 ‘빅딜’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재하겠다는 의미다.
주목할 대목은 문 대통령의 3자회담 구상이 ‘판문점’이라는 상징적 장소와 연계된 점이다. 문 대통령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이어 같은 장소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 사이를 중재해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호스트’ 국가 정상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두 정상과 함께 회동하는 그림이 가능해 보인다.
다만 문 대통령의 3자회담 구상은 아직 ‘제안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 미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또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려는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도 관찰 포인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이 만나서 그 결과가 순조로우면 3자가 만나 합의한 내용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실천적 약속을 완성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감대가 형성됐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같지 않다”며 “일단 제안하고 차후 서로 이야기하면서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남북 정상회담 합의의 ‘제도화’를 주문하고 나선 것도 이처럼 한반도의 통 큰 해결을 시도하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준비위에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기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기본 내용을 담아내고,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도 합의가 영속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임기에 구애받지 않는 집권기반을 갖추고 있는 반면 남측의 경우 정권의 변화에 따라 합의의 효력에 문제가 발생하는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합의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여나가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007년 10·4 선언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세계가 극찬했으며 유엔에서는 만장일치로 지지결의까지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라고 묻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이행하자면 국가 재정도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문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공약 대로 ‘남북기본협정’ 또는 ‘남북기본합의’를 체결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집에서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 발전하고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존중하며 변화된 국제환경과 남북관계에 맞게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점진적 평화통일 구상의 첫 수순인 ‘남북간 공존공영’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 쾨르버재단에서 제시한 한반도 평화구상과 궤를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라며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일”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통일이 되든 되지 않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말자는 뜻”이라고 밝히고, ‘간섭’의 의미에 대해 “예를 들면 대북 확성기나 대남 확성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때 ‘통일의 점진성’을 강조하면서 “남북한의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를 통해 남북경제통합을 발전시키는 경제통일을 우선 추진하겠다”며 “시장통합을 바탕으로 생활공동체도 형성해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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