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MBC ‘제4공화국’에 압력 정황…기무사 문건서 확인당시 연출자 “드라마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다”
검찰이 1995년 MBC ‘제4공화국’ 등 드라마 대본을 방송 전 미리 입수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시민들에 발포하라고 명령한 내용을 빼도록 압력을 넣은 정황이 당시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19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국군 기무사령부의 1995년 11월 13일 자 ‘서울지검 5·18 관련 드라마 대본 수정 요청’ 문건을 보면, 서울지검은 MBC ‘제4공화국’과 SBS ‘코리아 게이트’ 등 드라마 제작에 개입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최모 서울지검 검사장은 현재 12·12 사건 당사자들의 위치가 반전돼 있기는 하나, 방송사가 인기에 영합해 경쟁적으로 방송하면서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반대편을 지나치게 미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 검사장은) 현재 촬영 중인 5·18 관련 장면 가운데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이 시위대에 발포명령을 내리는 대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방송대본을 수정해야 한다고 공보처에 요청한 바 있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기무사는 “헌법재판소에 5·18 사건이 제소돼 있고, 야권과 사회 일각에서 관련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정치공세가 계속되는 시점에 검찰이 조사해 발표한 사실과 전혀 다르게 반영되면 여론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문건은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달 12일 추가 확보했다고 밝힌 8천 쪽 분량의 기무사 미공개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문건이 작성된 때는 검찰이 1995년 7월 18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기소 처분하고, 5·18 피해자들인 고소·고발인들이 같은 달 24일 이를 취소해달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직후였다.
실제 문건 작성 사흘 후인 11월 16일 방송된 제4공화국 10회 ‘오월의 노래 하(下)’ 편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발포명령 장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송된 드라마에서는 전 전 대통령이 “진압하라”고만 지시하고, 계엄군 내에서 “발포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현장 지휘관이 “명령은 도청을 사수하라는 것뿐”이라고 답하는 식으로 발포명령을 애매모호하게 표현했다.
이에 앞서 제4공화국 첫 회 방송 전인 9월 28일에는 만취한 30대 회사원 이모 씨가 차를 몰고 인천대 앞 촬영장에 들이닥쳐 조수현 촬영감독이 숨지고 최종수 PD가 전치 14주의 중상을 입는 등 의문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최 PD의 대타로 드라마 연출을 맡았던 장수봉 전 MBC PD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외부 압력을 받았는지는)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담당 연출자로서 민감한 사항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드라마 방송 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검찰은 그해 11월 30일 재수사에 착수했고, 그다음 달인 12월 3일 전 전 대통령을 전격 구속해 재판에 넘기기에 이른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선고하면서 “광주 재진입작전의 실시 명령에는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