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진전 여부 가늠 변곡점 전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북한은 아직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 11일 베를린 구상을 직접 거론하며 “친미사대와 동족대결의 낡은 틀에 갇힌 채로 내놓은 제안이라면 북측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등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촉구했지만, 이는 북한 당국의 공식반응으로 보긴 어렵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도 베를린 구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합의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말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북한은 노동신문 등 각종 매체를 동원해 비난조의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공식 입장은 제대로 내놓지 않은 상태다.
북한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가 지난 4일 한미정상회담을 ‘추태’ 등으로 비난하기는 했지만 7·4공동성명 발표일을 맞아 자신들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언급이라는 점에서 이를 정상회담에 대한 공식반응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한미정상회담 결과나 베를린 구상을 단번에 받기도, 그렇다고 걷어차기도 어려운 복잡한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상황을 고려해 “북한이 핵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밝혔다.
핵 문제는 북미 간에 다룰 문제라며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연계 차단을 노리는 북한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하지만 베를린 구상은 북한 붕괴 불원,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북핵접근, 평화체제 구축, 남북경제협력 등 북한 당국이 외면하기 힘든 대북원칙도 함께 담았다.
여기에다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해 정전협정 체결일(27일)을 계기로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를 중지하자는 제안도 담았다.
사실 군사적 긴장완화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관계에서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해온 의제라는 점에서 북한으로서는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36년 만에 열린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결론을 통해 “북과 남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며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심리전 방송 및 전단살포 중단을 주장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무조건 이행해야만 하는 북한의 정치시스템으로 볼 때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북한이 베를린 구상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숙고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만간 남북 군사당국 간 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할 적십자회담을 북한에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우리측 제안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것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 진전 여부를 가늠케 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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