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뜯어보기] 軍에서는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책 5종, 이유가

[뉴스 뜯어보기] 軍에서는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책 5종, 이유가

강윤혁 기자
강윤혁 기자
입력 2016-08-06 13:26
수정 2016-08-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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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글자전쟁’ ‘만화로 읽는 피케티’ 등 판매금지..사실상 불온서적 의 부활?

「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김진명, ‘글자전쟁’ p31~32)

소설 ‘글자전쟁’의 한 대목입니다. 이 소설은 지난해 8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군대에서는 판매금지입니다. 읽어서도 안 됩니다.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내용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납득이 가시나요?

국방부는 지난 5월 육군과 공군 마트(옛 PX)에서 판매하던 책 5종을 판매 금지시켰습니다.

국군복지단은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카리코), ▲‘글자전쟁’(김진명),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 등 5종에 대한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을 밝혔지만, 원론적인 해명에 그쳐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 등 출판계의 반발은 여전합니다.

군 마트에서 판매금지된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김진명의 소설 ‘글자전쟁’.
군 마트에서 판매금지된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김진명의 소설 ‘글자전쟁’.
■군이 신간도서 5권을 판매 금지시켰다

국방부는 지난해 정책 검토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복지단이 운영하는 군 마트에 신간 서적 200권씩을 비치했습니다. 그동안 군내 진중문고의 책들이 너무 오래된 베스트셀러들 뿐이라 신간 서적을 읽고 싶어하는 젊은 장병들의 수요를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전방 부대를 시찰하던 군 관계자가 마트에 비치된 서적들이 보안성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국방부 교육정책관실의 문제 제기에 따라 복지단은 군 마트에 보급된 책 200종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0권의 책을 복지단 심의 담당자들이 서로 겹쳐 읽는 방식으로 일일이 보안성 검토를 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을 확인해도 의문은 더해갔습니다.

군 마트에서 판매금지된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와 ‘칼날 위의 역사’ 그리고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군 마트에서 판매금지된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와 ‘칼날 위의 역사’ 그리고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군 마트 판매가 금지된 책 5종의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카리코)
「피케티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의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외국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32)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글자전쟁’(김진명)
「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p.31~32)
높은 놈이고 낮은 놈이고 좌우간 군바리들은 멕여야해!」(p.32)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
「오늘날 미국과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재연기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조선의 임금 선조가 생각난다. (중략) 전작권 반환을 사실상 무기 연기했으니 사생관이 뚜렷해야 할 군인정신이 있기나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p.249)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정부정책 및 국방정책을 비난하는 자료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
「중공군이라는 새로운 적이 한반도에 등장하고, 미 지상군이 연전연패를 당하자 지체 없이 북한 민간인 주거 지역을 향한 ‘초토화 작전’ 개시를 명했다. 맥아더는 미국의 이해가 훼손되고 전쟁 영웅인 자신이 전쟁 패배의 책임자로 몰리자 망설임 없이 ‘한국 민간인’들을 희생양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p.280)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
「미군정은 민중의 통일 의지를 짓밟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p.401)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국방부는 정훈 훈령에 따른 결과라 했지만 출판계는 반발했다

국방부는 ‘정훈·문화활동 훈령’에 기초한 심의 결과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출판계에서는 맥락을 무시한 채 부분적 묘사만을 문제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훈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이념 교육 및 군사 선전, 대외 보도 등을 군대 내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기초가 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글자전쟁’은 내용 가운데 ‘방산비리’ 등 군이 민감해하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판매가 금지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배우 임시완이 묻습니다 - “왜죠?”
배우 임시완이 묻습니다 - “왜죠?” 영화 ‘변호인’(2013)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다이어리.
■사실상 군내 ‘불온서적’ 취급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향후 개별 부대에서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경우 사실상 군내 ‘불온서적’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불온서적’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서적의 출판, 열독, 반입 등을 금지한 적도 있었습니다. 금지서적(금서)이라고도 불렸는데 불온서적은 금서 중에서도 사상적 이유로 금지된 서적을 가리킵니다.

영화 ‘변호인’(2013)에서는 배우 임시완이 연기한 주인공이 불온서적을 읽은 혐의로 처벌을 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복지단이 올해 1월 1일 군 마트에 신간 서적을 비치하기 전까지 신간 서적의 군내 유입 적정성 검토를 위한 심의위원회가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미리 거쳐야 할 절차를 뒤늦게 밟게 되면서 5종의 책이 군 마트에서 퇴출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정훈·문화활동 훈령’에 따른 군내 유입 서적 심의기준>
1. 북한체제를 찬양·미화 하거나 이적단체를 옹호하는 자료
2.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정부정책 및 국방정책을 비난하는 자료
3.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거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자료
4. 국제평화 및 국제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자료
5. 장병의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에 위배되는 자료
6.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
7
. 음란한 내용으로 사회윤리나 공중도덕을 해치는 자료
8. 반인륜적, 반사회적 행위를 묘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료
9. 정부,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자료
10. 그 밖에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그러나 과거 군내 ‘불온서적’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갖고있는 이들은 이러한 심의규정조차 모호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이 아직도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사고관에 갇혀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표합니다.

동아일보 1992년 4월 24일자 5면 보도내용
동아일보 1992년 4월 24일자 5면 보도내용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군 내 불온서적’ 저자 중에는 전직 대통령도 있다

우리나라는 군내 ‘불온서적’의 저자가 두 명이나 대통령을 지낸 나라입니다.

1992년 4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그해 3월에 치러진 제14대 총선에 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입증 자료라면서 ‘건강한 부대관리’라는 제목의 선거 지침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그 문서에는 ‘불온간행물 도서’ 574종의 목록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그 목록에 있던 책 ‘나와 조국의 진실’의 저자 김영삼은 그해 12월 치러진 선거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같은 목록에 있던 ‘조국과 함께 민족과 함께’의 저자 김대중은 1998년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2008년에는 국방부가 23권의 책을 군내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그 차단대책을 지시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목록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에서 권장도서에 뽑혔던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이미 시중에서 10만부 이상 팔리고 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을 모은 ‘대한민국사’(한홍구) 등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책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당 서적들은 군내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크게 늘기도 했습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연 ‘2008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특별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연 ‘2008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특별전’
■2008년 군 법무관이 문제 제기를 했지만…

급기야 당시 육군과 공군 법무관 5명은 이러한 지시가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및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재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0년 10월 28일, ‘불온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 군인의 정신 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다섯 명의 군 법무관들은 군의 위신을 실추하고 복종 의무를 위반해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징계와 파면을 당했습니다. 파면됐던 두 법무관들은 징계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군에 복귀했으나 한달쯤 지난 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를 근거로 국방부는 이들에게 전역 처분을 내렸습니다.

2011년에는 공군 소속 한 전투비행단장 명의로 발송한 공문에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서적반입 차단대책’이라는 제목과 함께 총 42권의 책 리스트가 딸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2008년 당시 군내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23권에 새로 19권이 추가돼 있었습니다.

군 ‘불온서적’ 지정 관련 헌법소원 합헌 결정에 대한 입장 밝히는 군 법무관들
군 ‘불온서적’ 지정 관련 헌법소원 합헌 결정에 대한 입장 밝히는 군 법무관들 군 ‘불온서적’ 지정 관련 헌법소원 합헌 결정이 내려지자 위헌 소송을 제기했던 군 법무관들이 결정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군 내에 이제 불온서적 리스트라는 형태로 관리되는 서적은 없다”며 “이번에 퇴출된 5종의 책이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군의 ‘불온서적’에 대한 논란은 모두 끝난 것일까?

국방부는 무슨 책이든지 읽도록 한다면 북한의 주체사상이 담긴 책을 대한민국 군인들이 병영 내에서 읽어도 되냐는 반박을 합니다.

그러나 국방부가 적용하는 심의기준에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표현물만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자칫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반박한다는 이유만으로 군 마트에서 퇴출될 수 있습니다. 정부나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자유롭게 읽던 교양 인문 베스트셀러나 권장 도서, 대학 교재들조차 군에서는 퇴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라는 기준은 이를 심사하는 정훈장교들에게조차 모호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이번 복지단의 심의 결과는 향후 개별부대에서 보안장교들이 행하는 군내 반입 물품에 대한 보안성 심사의 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5종의 책들이 군 내에서 소지하거나 읽는 것이 금지되는 군내 ‘불온서적’처럼 다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참 안타까운 일인데 아직도 국가가 우리 군인들에 대한 어떤 사상을 가지고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것을 보면 이게 국민의 군대가 아닌 이데올로기의 군대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점에서 군대의 호감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오히려 이 소식이 알려지면 그 책들은 더 잘 팔릴 것”이라며 “서점마다 ‘입대 전에 읽어보자 불온도서’라는 코너가 생기면 날개 돋친듯이 팔릴 거 같다”고 꼬집어 비판했습니다.

군 마트에서 판매 금지된 이 책들이 되레 일반 서점에서 잘 팔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잊고 있던 군내 ‘불온서적’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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