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계파 투쟁·분화의 역사
여권의 계파 정치는 투쟁과 분화를 통해 역사를 이어 왔다.그 뿌리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를 꼽을 수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끄는 동교동계와 양대 산맥을 이룬 정치 파벌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두 축이었다. 상도동계는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의 주류를 이뤘고, 그 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에서 민주계로 불리며 맥을 이어 왔다. 현역 의원 중 대표적인 상도동계는 서청원·김무성·정병국 의원 등이 있다.
1997년 이후부터는 유력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주류 세력이 재편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1997년 대선을 계기로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주류 세력이 형성됐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당은 친창(친이회창)과 반창(반이회창)으로 나뉘었다. 대표적인 반창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2002년 이 총재에게 반기를 들어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현재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 구도가 형성된 것은 2007년 대선 경선부터다. 이명박·박근혜라는 양강 후보가 맞붙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친이계에서 주도한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며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낙천한 친박 인사들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친박연대를 창당해 뭉쳤다. 서청원 의원이 친박연대 대표였다. 친이·친박 갈등은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박 대통령은 본회의장에 직접 서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나섰고, 결국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두 계파는 완전히 갈라섰다. 이어 박 대통령이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2012년 총선에서는 2008년과 반대로 친이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당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친박계와 이를 견제하려는 비박계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공천을 놓고 ‘정신적 분당’ 상태까지 치달았다. 이후에도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 ‘응급처치’만 한 채 끌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여권의 계파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16-07-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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