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관료’→새누리, ‘원조친박’→더민주…핵심들의 ‘越境’
본격적인 ‘선거의 계절’이 도래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객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예민한 선거철에 진영을 오가는 ‘월경’(越境) 행보를 보이는 이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특히 4·13 총선이 목전에 다가오다 보니 공천의 향배에 따라 살길을 찾아 떠나는 ‘생존형 인사’들의 발걸음이 두드러진다.
20일 더불어민주당 행을 발표한 수도권 3선인 진영 의원(서울 용산)의 행보에 정치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조 친박(친 박근혜)계’라고 할 수 있는 진 의원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현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기초 연금 도입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가 장관직을 던지면서 비박(비 박근혜)계로 돌아섰고,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의 고배를 마셨다.
한때나마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인사가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집권 세력에 칼을 겨누는 야당 진영으로 ‘이적’을 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지난달 더민주당에 입당한 조응천 전 검사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 전 검사는 지난 2014년말 정치권을 뒤흔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핵심 당사자 중 한 사람으로, 야당행이 결정되면서 여권에 한차례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3선을 해온 조경태 의원 또한 올해 초 더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조 의원의 사례는 거의 13년만에 야당 현역 의원이 여당으로 이동한 사례로 주목을 끌었다.
지난 연말 새누리당 입당을 시도했다가 좌절된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있다.
김 전 원장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을 거쳐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6년 국정원장에 임명된 노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난 연말 새누리당에 팩스로 입당 신청을 했던 김 전 원장은 입당신청 직후 재보선에서 야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해당 행위 논란’에 휩싸이면서 한 달도 안 돼 제명당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이른바 ‘책사형 인사’들의 진영 간 이동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 원로로서, 또는 원외 조력자로서 진영을 떠나 자신의 경륜과 식견을 ‘기부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수장으로 등판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에 이어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에 내정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투신한 김 대표는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3차례 지낸 정통 보수 인사였다.
이후 2004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변신하더니, 2012년 대선 국면에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캠프에 합류했던 역사가 있다.
반면 김 대표에 맞서는 ‘대항마’로서 영입 의사를 타진 중인 강 전 장관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정통 야권 인사다.
16∼18대 국회에서 옛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내리 3선 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옛 더민주당) 전북지사 예비후보로 출마했다가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마찬가지로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진영을 가로지르는 행보를 보였다.
이 명예교수는 이후 2014년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에 내정됐다가 인선이 무산됐으며,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했다.
역시 국민의당에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합류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또한 여야 ‘협곡’을 넘나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YS정부까지 내각과 청와대에서 일해온 윤 전 장관은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났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2014년에는 당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제1차 독자세력화를 추진했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야권 인사로 탈바꿈한 바 있다.
이처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넘나드는 정치인들의 행보에 대해 정치권의 평가는 각양각색이다.
중국 덩샤오핑의 ‘백묘흑묘론’(白猫黑猫論·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과 같은 중도 실용주의에 입각, ‘보수 대 진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정치권에 실용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리라는 기대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이들의 행보가 결국은 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의 향배를 따라 부초(浮草)처럼 휩쓸려 다니는 갈지자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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