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 논의한다’ ‘노력 계속한다’ 5개 중 1개꼴로 애매모호 조항

‘추후 논의한다’ ‘노력 계속한다’ 5개 중 1개꼴로 애매모호 조항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5-12-21 23:16
수정 2015-12-2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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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여론 의식한 ‘꼼수 합의’

여야 합의문의 이행률이 저조한 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상당수 포함된 탓도 크다. 합의 파기에 대한 비난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을 위한 ‘통 큰 합의’라기보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꼼수 합의’에 가깝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여야의 합의는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합의 이행률 떨어뜨리는 요인 손꼽혀

합의 문구 가운데 ‘합의 처리한다’가 대표적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2일 합의문에 경제활성화법과 경제민주화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을 ‘정기국회 내 합의 처리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 처리’를 ‘합의 후 처리’로 고쳐 달라고 요청했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합의 못하면 처리 못하는 건 똑같다”며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처리’에, 새정치연합은 ‘합의’에 각각 방점을 찍으면서 문구에 대한 해석 문제를 놓고 여야 갈등만 불거졌다. 해당 법안에 대한 처리 역시 요원한 상황이다.

‘합의 처리한다’ 외에 ▲추후 논의한다 ▲최대한 처리하도록 노력한다 ▲최선을 다한다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자체 노력을 계속한다 ▲최대한 신속히 처리한다 ▲원칙적으로 완료한다 ▲필요에 따라 ▲우선 처리한다 ▲충실히 이행한다 등도 합의문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용어’들이다.

●“여야 모두 책임지지 않겠다는 표현”

이렇듯 구체성이 떨어지는 애매모호한 문구가 담긴 합의 조항은 전체 600개 중 20.0%인 120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합의 조항 5개 중 1개꼴이다. 이러한 문구가 담긴 합의 조항은 여야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점에서 합의 이행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오리발을 내밀기 쉽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 합의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애매모호한 문구가 담기면 ‘처리하기 어렵다’,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다’ 등으로 생각하면 맞다”면서 “합의를 지킨 것도 어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야 모두 책임지지 않겠다는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합의 문구 가운데 ‘등’이라는 의존명사와 ‘는’이라는 보조사가 함정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범위를 특정하지 않은 탓에 여야의 해석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2013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개혁 특별위원회 여야 합의사항’에 중립성 강화를 위한 자체 개혁안 보고 대상으로 ‘국방부 등 국정원 이외 국가기관’이라고 명시했다. 여야는 이후 보고 대상에 국방부만 포함시킬지,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국가 안보기관이 추가되는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결국 흐지부지됐다.

또 ‘공청회는 공개한다’라는 문구를 놓고 공청회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의견을 듣는 모든 회의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팽팽히 맞서면서 진통을 겪기도 했다.

●“서술어·조사 교묘하게 섞는 관행 벗어나야”

반면 ‘합의 처리’에서 용어 순서만 바꾼 ‘처리 합의’의 문구가 담긴 조항은 이행률이 상승했다. 예를 들어 ‘본회의에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 등의 합의 조항은 여야 간 이견이 있을 수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를 제대로 지키려면 서술어와 조사 등을 교묘하게 섞어 넣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2015-12-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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