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vs야·당vs청·입법vs행정’ 다면 충돌 양상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후 정치권에 몰아닥친 후폭풍의 규모는 당초 예상치를 뛰어넘는 분위기다.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단순히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 “여당 원내사령탑이 경제살리기에 협조했는지 의문” 등을 언급하며 여야 정치권과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해 최고 강도의 비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대책을 담은 법안을 포함해 모든 국회 의사일정 협의를 중단키로 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6월 임시국회는 물론 앞으로 정치 일정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평년 같으면 하한 정국을 앞둔 정치권이 여야, 당청, 입법·행정부가 다면 충돌하는 극심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새누리당은 당장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진화 시도에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거부권 발표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법이 위헌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통과시킬 수는 없는 문제 아니냐”면서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쉽게 불길이 잡히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가장 큰 뇌관은 국회법 개정안 협상의 당사자였던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다.
비박(비 박근혜)계는 유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며 재신임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친박(친 박근혜)계 강경파를 중심으로 이미 협상 실패와 당청 소통 부재 등을 이유로 유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지도부를 흔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즉답을 피했지만 이르면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거취문제를 포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10개월도 남지 않은 내년 4월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과도 연결 짓는 시각이 많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의 투톱을 중심으로 비박계가 다수인 현재 최고위원회 체제를 최대한 흔들어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된다면 친박계의 지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한다고 해도 지난해 7·14 전당대회 패배를 비롯해 세력이 위축되며 그동안 숨죽였던 친박계의 공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단순히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국회법 재의 일정을 잡을 때까지 모든 의사일정의 협상을 중단을 선언하고 ‘전면전’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삼권분립이라는 황금률의 삼각형 한 축이 일그러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완전한 삼각형으로 복원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우선 국회의장이 재의 안건을 부의하는 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프로세스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모든 여야 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단순한 재의가 아니라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을 원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이를 거부함에 따라 결국 여야간 충돌은 피해갈 수 없는 외통수 상황에 처했다.
이 경우 정부·여당이 경제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역점 추진 중인 서비스산업발전법, 관광진흥법, 크라우드펀딩법 등은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논란 자체가 정부의 권한인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하려는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당장 8월까지 정부 예산 결산이 예정돼 있고, 9월부터는 내년도 예산 심의를 위한 정기국회가 예정돼 있어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가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