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집단자위권 범위 ‘한반도-대한민국’ 표현도 이견”
한반도 지역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요건과 절차, 범위,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한일, 한미일 국방 당국간 실무협의가 이르면 내달부터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한민구 국방장관과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30일 싱가포르에서 양자 회담을 하고 한반도 지역에서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 때 한국 정부의 요청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세부적인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키로 했다.
한일간 실무협의는 기본적으로 한미일 3자 안보토의(DTT) 틀 내에서 진행할 계획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한일 국방정책실무회의도 가동될 것이라고 국방부 관계자는 31일 밝혔다.
한일, 한미일 간에 진행될 실무협의는 일본 자위대가 어떤 상황에서 한반도 지역으로 출병하게 되는지, 한국 정부와 사전 동의 절차 협의는 언제, 어떤 군사외교 채널로 할지,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지역에서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 미군 함정 호송 및 보급 ▲ 주일미군 유엔사 후방기지 지원 및 호송 ▲ 한국내 민간인 소개작전 ▲ 주일미군 기지와 미국령 괌으로 발사하는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 등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하기 위해 북한 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하는 행위도 집단자위권 행사 범위에 포함해야 할지는 논란이 큰 대목이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지난 18일 일본 TV에 출연해 북한이 미국을 미사일로 공격하고 두 번째 이상의 미사일 발사가 준비 중이라면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해 미국과 함께 북한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한민구 장관은 나카타니 방위상의 이런 발언을 겨냥해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라며 “(북한 미사일기지 공격 시에도) 우리의 사전 협의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 장관의 발언을 경청한 뒤 이렇다저렇다 응대를 하지 않아 앞으로 실무협의 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설정하는 연합작전구역(KTO:Korea Theater of Operation)에 공해상이 포함되면 일본이 자위대를 이 공해상으로 진입시킬지도 관심이다.
KTO는 전시에 준하는 유사사태 발생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지상, 해상, 공중에서 북한의 무력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 인근에 선포하는 구역을 말한다. KTO는 공해상에도 설정될 수 있다.
공해는 국제법적으로 선박과 항공기의 통항이 보장되지만, 전시에는 다른 나라 선박과 항공기의 공해 통항권은 제한되고 있다. 전쟁이 발생한 해상에 잘못 진입했다가 피아 식별이 되지 않아 피폭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한 전문가는 “공해는 국제법적으로 통항을 보장받는 곳인데 유사시 이를 제한하려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일본이 순순히 응할지는 협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자위권 행사 지역에 대해 일본 측에서 ‘대한민국’이라 표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지역까지 포함해 ‘한반도 지역’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북한지역에까지 한국 정부의 사전협의와 동의를 얻어야 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것을 집단자위권 행사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시각 때문이라고 국방부의 한 전문가는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때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사전 협의와 동의 절차를 어떤 채널에서 다뤄야 할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주일미군과 함께 함께 한반도 지역으로 출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미일 상시협의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미일 상시협의기구가 구성되면 중국의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양욱 연구원은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역에서의 집단자위권 행사 때 한국 정부의 요청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했지만 그 동의가 사전 동의인지는 불명확하다”면서 “독도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일본 자위대가 동해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과 집단자위권 문제는 미일 양국관계인 동시에 일본 국내 주권적 성격이 강하다”면서 “비록 우리의 영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집단자위권 행사와 관련 법제 개정시 평화헌법 정신을 반영하고, 주변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실무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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