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D-10> 세월호 여파…조용한 ‘3無선거’

<지방선거 D-10> 세월호 여파…조용한 ‘3無선거’

입력 2014-05-25 00:00
수정 2014-05-25 10:3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유세차·율동·로고송 ‘실종’…추모·안전에 초점, SNS 활용 디지털전 확산…네거티브 공방전 여전

“700만 시민이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의 안전은 매우 중요합니다.”(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원들에게) 고맙고, 고생하세요. 선거운동을 조용히 해주세요.”(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의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대다수 후보가 유세차량이나 율동, 로고송이 없는 ‘조용한 캠페인’을 실천하면서 공식 선거운동 나흘째인 25일까지도 시끄러운 대규모 유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참사 이후 ‘핫이슈’로 떠오른 안전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과 다짐도 새로운 선거 풍경이다.

그럼에도 경쟁 후보 선거캠프 간 비방전은 여전했다.

이미지 확대
“우리 지역 후보 누가 나왔나”
“우리 지역 후보 누가 나왔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4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를 알리는 선거 벽보를 전국에 일제히 붙인 23일 한 유권자가 서울 종로구 계동 주택가에서 후보 안내 벽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유세차·율동·로고송 ‘실종’…발품팔기로 스킨십 강화 = 여야 각 정당이 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한 선거운동을 천명한 것이 비교적 충실하게 지켜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후보들 사이에서는 ‘3무(無) 선거’가 유행하고 있다.

후보에 따라 ‘하지 않아야 할’ 3가지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시끄럽거나 추모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행동들이 포함돼 있다.

먼저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유세차, 세력 동원, 네거티브 등 3가지가 없는 선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세차뿐만 아니라 확성기, 로고송, 율동단도 동원하지 않기로 했다.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도 제주도에는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3무’에서 착안해 로고송, 유세차, 인원 동원이 없는 3무 선거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강릉시장에 출마한 새누리당 최명희, 새정치연합 홍기업 후보 등도 로고송, 율동, 확성기가 없는 3무 선거운동에 뜻을 같이했다.

공식적으로 ‘3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과거 유세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러한 선거 도구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후보들이 대다수다.

인천시장 후보들은 선거기간 내내 모두 로고송과 율동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 등은 로고송을 만들어놓고도 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도 중앙당에서 허용한 로고송만 이용하는 대신 율동은 금지했고, 새정치연합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는 선거운동원의 율동을 금지하고 지역발전 공약을 동영상으로 홍보하는 데 치중했다.

이처럼 대규모 유세를 버린 후보자들은 골목을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직접 유권자와 만나는 대면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

박원순 후보가 배낭과 운동화 차림으로 재래시장 등을 찾아다니는 ‘원순씨의 배낭’ 캠페인에 나섰고, 원희룡 후보도 운동화 차림으로 골목을 누비며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

덕분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하던 일방통행식 유세보다는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내실있는 선거가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도 지도부의 현장 지원을 예년보다 자제하고, 연예인 등 유명 인사를 동원한 축제식 선거활동을 지양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후보들의 경우 조용한 선거 탓에 판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다며 울상을 짓기도 한다.

충청권의 한 후보자는 “선거 분위기가 나지 않아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하소연했고, 강원 지역의 한 도의원 후보 측은 “시끌벅적한 선거운동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서로 눈치를 보고 있지만, 누군가 먼저 과감하게 시작하면 다른 후보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참배로 경건한 ‘첫발’…”안전이 최고” = 세월호 참사가 선거에 미친 영향은 후보자들의 초반 동선에서도 드러난다.

희생이 가장 큰 안산시를 관할하는 경기지사 여야 후보들은 선거운동 첫날인 22일 아침 나란히 안산 단원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 참배로 스타트를 끊었다.

인천지사에 출마한 새누리당 유정복, 새정치연합 송영길 후보도 요란한 출정식 대신 인천시청 앞 합동분향소 조문으로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대전시장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박성효 후보와 새정치연합 권선택 후보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하며 경건한 출발을 알렸다.

나머지 후보들은 참사 이후 최대 화두로 등장한 ‘안전 챙기기’ 위주의 일정을 짰다.

정몽준 후보와 박원순 후보는 22일 0시를 기해 최근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각각 점검하는 것으로 선거 레이스에 돌입했다. 정 후보는 지하철 점검 이후에도 노후된 도심 아파트, 안전등급 C등급인 성산대교 등을 잇따라 돌아보며 안전 문제를 집중 공략했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는 같은 날 0시 대구 월배차량기지에서 지하철 안전점검에 나섰고, 같은 날 경쟁자인 새정치연합 김부겸 후보도 대구지하철 화재가 발생했던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을 찾았다.

충북 청주 등 지방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에도 과거 선거처럼 흥미를 유발하는 경쾌한 홍보 문구가 사라지고 대신 ‘안전’, ‘행복’, ‘비전’ 등의 단어가 자리를 채우고 있다.

슬픔에 빠진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봉사’와 선거운동을 결합하기도 한다.

송영길 후보 캠프는 봉사 유세단을 조직해 어린이 교통지도, 거리 휴지줍기 등의 봉사활동에 나섰고, 같은 당 한범덕 청주시장 후보도 선거운동원들을 쓰레기줍기와 점심 배식 현장에 투입했다.

◇ 온라인·장외공방은 ‘과열’…네거티브 조짐도 = 떠들썩한 유세가 불가능해지면서 대안으로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홍보전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는 하루 2∼3곳의 유세 현장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고, 경쟁자인 새정치연합 김진표 후보도 ‘김진표 앱’을 개발해 거리유세 현장을 유권자들에게 전달 중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한 온라인 홍보물 대결이 불꽃을 튀긴다.

정몽준 후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간선도로에서 휘날리며’로, ‘웰컴 투 동막골’을 ‘웰컴 투 마곡’으로 각각 바꿔 공약을 간접 홍보 중이다. 포스터에 나온 주인공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교체한 것은 물론이다.

박원순 후보의 경우도 팬클럽 사이트인 ‘원순씨닷넷’에 영화 ‘어벤저스’의 포스터를 인용한 ‘캡틴 서울시티’와 ‘지구를 지켜라’에서 본뜬 ‘서울을 지켜라’ 등 패러디 홍보물을 공개했다.

온라인과 SNS 외에도 캠프 차원의 성명과 해명자료로 상대 후보와 공방을 벌이는 장외 포격전도 예년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내용의 네거티브성 논평이나 SNS를 활용한 흑색선전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박원순 후보와 남경필 후보의 경우 후보자 본인이 수차례 ‘네거티브는 없다’고 선언했음에도 정작 캠프 대변인단은 경쟁 후보를 비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논평을 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특히 SNS 등에서 ‘상대 후보의 종교가 구원파다’, ‘상대 후보가 밤마다 지지자들과 고급 술집에 다닌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