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南 강경노선 굳히며 美와는 대화국면 대비北 선거개입 시도할듯..南北대립 격화 가능성
임진년 새해를 맞은 한반도 정세가 벽두부터 순탄치 못한 기류에 휩싸이고 있다.’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북한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의 대내외 정책노선을 표방하는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남 비난의 포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지난달 30일 북한 국방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예고된 바 있다. 그러나 신년 공동사설 발표는 김정은호(號)의 정책 방향성을 공식화하는 창구라는 점에서 향후 정세운용에 미치는 의미와 무게감은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일단 이번 공동사설은 대내용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하고 충성을 강조하는데 주안점이 있다는 것이다.
’강성부흥’과 ‘선군’이라는 김정일 유훈통치의 핵심 키워드를 강조하고 나온 것은 이 같은 내부 결속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풀이다.
북한의 대남 비난전은 대내용 메시지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이 있다. 안을 뭉치게 하려면 밖에 ‘가상의 적’으로 세우고 의도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이다. 미군철수 주장을 5년만에 재개한 것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사설이 대내용 메시지와 함께 향후 대외정책 노선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정리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남측을 상대로는 강경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주변 4강(强)과는 유화적으로 갈 것임을 예고하는 메시지가 읽히고 있다.
국방위 성명과 마찬가지로 남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난조로 가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나아가 중ㆍ러와는 우호관계를 강조하는 이중적 대응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을 소외시킨 채 미국과의 양자대화(북미 3차대화)와 6자회담 재개 국면으로 가는 ‘통미봉남(通美封南)’식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 심심찮게 주장해온 ‘핵보유국’을 이번 사설에서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의 대화국면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미대화를 주축으로 하면서 후견세력인 중국과는 ‘밀착’을, 우호국인 러시아를 상대로는 ‘우군화’를 가속화하는 대외행보가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관계와 6자회담을 두개의 축으로 하는 한반도 정세는 자칫 기형적으로 돌아가게될 가능성이 커졌다.
상황 관리가 잘못될 경우 남북관계는 풀리지 않은 채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가 본격화되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앞으로의 대화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소외된 채 한반도 현안과 관련된 중요한 논의가 북미에 의해 주도되는 외교적 고립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외교적 재난’이 고스란히 되풀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남북간의 대립과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다. 현국면에서 북한의 대남 비난은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강경’ 쪽으로 몰아갈 소지가 다분하고 이는 남북관계를 극도의 경색국면으로 되돌리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일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북측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주기위해 6.15와 10.4 선언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남한 내 여론을 갈라놓는 선거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국지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의 정세관리와 대응이 좀처럼 여의치 않은 국면에 놓이게 됐다.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주변 4강과 대화국면을 시도하는 시나리오가 예상되고 있지만 독자적 대북 레버리지가 없는 현 상황에서 대응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고 외교적 공간도 커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대외전략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적절히 풀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대북 정책기조의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있지만 내년 선거를 앞두고 현실적으로 국내 정치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의 이탈과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집권 4년간 지켜온 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2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될 대북 메시지가 어떤 내용을 담을지 주목된다. 북한이 강경하게 치고나온 이상 원칙론적 맞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즉자적 대응보다는 다양한 상황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략적 모호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새해 한반도 정세는 출발부터 남과 북이 강(强) 대 강(强)의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살얼음판’ 형국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