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광주특위 당시 미국정부 5.18 회신내용 공개
“한국 당국은 5월 18일 0시 1분 시작된 비상계엄 확대 선포 2시간 전에 이를 미국에 통보했다.그러나 미국은 정치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대학과 국회를 폐쇄하려는 의도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5.18 민주화운동 당시 자국의 대응과 입장을 설명한 미국 정부의 문건이 공개됐다.5.18 기념재단이 11일 공개한 이 문건은 1989년 5.18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광주특위) 활동 당시 광주특위가 미국 정부에 보낸 48개 항의 질문에 대한 회신 형태로,전체내용을 개괄한 성명과 답변,논평 등이 첨부됐다.
질문은 5.18의 발단이 된 12.12 사건의 인지 경위,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시행에 대한 반응,미국이 파악한 사태의 심각성 정도,진압에 개입했는지 등에 관한 것 등이다.
하지만 미국은 상당 부분을 할애해 5.18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원만한 합의를 시도한 사실을 강조했으며 5.18 개입 의혹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장악된 언론 등의 사실 왜곡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이 문건에서 “5월 17일 9시 30분께 미국관리들은 청와대로부터 다음날 0시 1분을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그때쯤 김대중.김영삼.김종필씨와 다른 여러 명의 정치인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들리면서 정부의 무차별 조치가 명백해졌다.”라며 “(당시) 월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5월 18일 최규하 전 대통령을 방문해 전날의 탄압과 비상계엄 확대는 ‘충격적이고 경악할 일’이라는 미국 측의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또 ‘미국이 소련과 대치상황에서 한반도 안정 유지’라는 국익이 한국 민주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군사 당국의 쿠데타를 묵인한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는 “카터 행정부는 진정한 안정과 안보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지켰다.”라고 답했다.
미국은 1980년 이후 반미감정에 대해서도 “미국이 광주 비극에 직접 관련했거나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그릇된 인상이 한 이유가 됐다.”라며 “이는 한국 당국자들의 기만에 의해,5공화국 기간에 5.18의 진상을 널리 알리는 일을 제한함으로써 조장됐다.”라고 말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달 중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5.18 기념재단을 방문한 뒤 재단 측에 이 문건을 보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대사관 측에서 5.18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보내온 것”이라며 “궁금증을 말끔히 없애기에는 부족하지만,광주특위 당시 미국의 대응양상 등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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