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였던 소년은 그 다음날 상점을 털었다

학폭 피해자였던 소년은 그 다음날 상점을 털었다

입력 2020-11-01 22:30
수정 2020-11-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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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의 기록] <1> 소년범의 탄생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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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혜주는 착한 딸이었다. 부모 눈에는 ‘그럴 애’가 아니었다. 가끔 학교를 빠지고 집에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누구를 때리거나 뉴스에서처럼 무면허 운전을 일삼는 ‘나쁜 아이들’과 달랐다.“천성이 착하고 명석해 쾌활했던 아이가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어쩌다 나쁜 친구들을 만나 방황했습니다.” 혜주 아빠는 절도와 폭력을 저지른 딸이 6개월간 보호처분 시설에서 지내고 나올 때 시설 선생님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는 우리 애는 나쁜 애가 아니라는 믿음과 앞으로 친구만 잘 사귀면 다시는 엇나가지 않을 것이란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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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이란 이름은 벗을 수 없는 멍에다. 사회가 씌운 멍에인 철가면 뒤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나사로청소년의집’ 아이들의 연출 사진.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소년범이란 이름은 벗을 수 없는 멍에다. 사회가 씌운 멍에인 철가면 뒤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나사로청소년의집’ 아이들의 연출 사진.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어른들은 어떤 아이가 소년범이 되는지 궁금해한다. 궁금증의 밑바닥엔 ‘내 아이는 소년범이 될 리 없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그래서 소년범은 성인과 똑같이 벌줘야 한다고 말하고 소년범을 보호하려고 만든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벌을 강화하면 소년범죄를 멈출 수 있을까. 서울신문은 그 답을 찾으려고 소년범죄를 5회에 걸쳐 기록하기로 했다. 지난 6개월간 범죄를 저질러 보호처분을 받은 79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의 궤적을 함께 돌아보고, 소년범죄의 뿌리를 찾았다.

직접 들여다본 소년범의 세계는 복잡했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가 소년범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들도 한 번 삐끗해 비행의 길에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했다. 부모는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진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아이들은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고, 책임을 지는 대신 도망치기 바빴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는 모호했다. 어제까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는 그 다음날 또 다른 아이를 때리고 괴롭혔고, 유흥비를 벌겠다며 상점을 털었다. 10대의 세계에서는 힘과 돈, 성이 곧 권력이었다. 무리에서 따돌림당하지 않으려고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데려와 피해자로 삼는 아이도 있었다.

친구를 잘못 만나 방황한 것이라는 혜주 아빠의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소년의 죄는 사회의 죄였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만큼 중요한 건 어떤 어른을 만나느냐였다. 문제아로 찍혀 가정과 학교에서 탈락한 아이들은 재기의 기회는커녕 어른들의 냉대와 낙인에 좌절했다. 소년범은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존재였다. 어른들이 소년범을 향해 돌을 던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2020-11-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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