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00년생 청년 시인 한재범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사옥에서 만난 한재범 시인은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는 젊을 때만 쓸 수 있는 시를 당분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2019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자에 한재범(24)이 호명됐을 때 문단에는 신선한 충격이 일었다. 2000년생으로 ‘윤석열 나이’가 도입되기 전인 당시 그는 스무살, 문예창작과 입시를 준비하는 재수생이었다. 그런 그가 국내 3대 문학 출판사 중 하나인 창비에서 덜컥 등단해 버렸으니. 창비에서도 창사 이래 최연소라 화들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 이후 5년 만인 최근에서야 시집을 한 권 묶었다. 제목은 ‘웃긴 게 뭔지 아세요’(창비)다.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사옥에서 한재범을 만나 ‘웃긴 게 뭔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기자의 시답잖은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조만간 논산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있다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시를 대하는 그의 태도처럼.
“시를 쓸 때 머리가 아파요. 가끔 가슴이 아플 때도 있죠. 그런데 가슴 아프게 쓴 시는 안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시를 쓰다가 막히면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걸 머리를 써서 뚫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그걸 뛰어넘는 기쁨을 삶의 다른 부분에선 아직 찾지 못했어요.”
한재범이 좋아하는 시인은 이상(1910~1937)이다. 두뇌를 총동원해 풀어야 하는 퍼즐 또는 미로와도 같은 시를 남긴 사람. 한재범도 당분간 이런 시를 쓰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할 요량이다. 팽팽 잘 돌아가는 머리를 십분 활용해 “20대인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시”를 쓰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이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어요. 그게 시가 재밌는 점이죠. 공간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 그곳만의 법칙이 있잖아요. 거기선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죠. 이런 공간의 논리를 비꼬는 시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시는 어려운 장르다. 어떤 이는 “요즘 시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한재범도 한때는 ‘시집을 시 쓰는 사람만 사서 읽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 2030이 모여 있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SNS)에서 시는 ‘힙함’의 상징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고유한 암호와도 같은, 불투명한 시의 세계를 내가 감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거죠. 나만의 ‘특별함’을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이랄까요. 어차피 인스타그램은 외면만 보여 주는 플랫폼이잖아요.”
한재범은 “평생 시를 쓰고 살 것”이라면서도 정작 일상에서는 “시와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이토록 냉정한 데에는 ‘시가 돈이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이 자리한다. 다만 글을 쓰는 재주밖에는 없으니 ‘문송한’ 세상에서 고민이 크다. 야구, 축구를 좋아하니 스포츠 기자는 어떨지도 생각해 보고 있단다.
“시가 재밌는 건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 쓰는 것만으로 돈이 된다면 삶에도 영향을 줬겠죠. 생계고 직업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걸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시를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한재범 시인은
200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재수생 시절인 2019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2024-05-03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