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만 따지는 개헌… “최소 1년, 국민 의견수렴 거쳐야”[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권력구조만 따지는 개헌… “최소 1년, 국민 의견수렴 거쳐야”[87년 체제 ‘대한민국’만 빼고 다 뜯어고치자]

김가현 기자
김가현 기자
입력 2025-02-02 23:43
수정 2025-02-0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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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② ‘국민’은 없는 개헌 논의

정치권 당리당략 따라 좌우
與 계엄 희석·野 정권교체에 초점
文정부때 신경전… 중요조항 삭제
“다음 대선에서 방법론 제시 합당”

아이슬란드 ‘집단지성’ 모범사례
무작위로 뽑힌 국민들 헌법 토론
온라인서 초안 만드는 과정 참여
한국, 국민 참여 확대·상시 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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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87년 체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정작 논의 주체에 ‘국민’은 없다. 현재의 개헌 논의는 헌법이 규정한 주권자인 국민의 눈이 아니라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개헌 주제 역시 국민의 삶과 무관한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된 실정이라 개헌 여론 수렴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여야 모두 개헌 논의와 관련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고 있다”면서 “여당은 가능한 한 계엄 사태를 희석시키는 쟁점을 끌고 오는 한편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려고 하고, 야당은 정권 교체가 유력한 만큼 지금의 헌법이 좋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을 위한 개헌’을 고민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의 주제도 권력구조 개편 위주다. 당선된 대통령이 4년 임기 후에 재신임을 받으면 다시 집권할 수 있게 하는 ‘4년 중임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각각 외치와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의회의 다수당이 행정부 구성권을 가지는 ‘의원내각제’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김 교수는 “국민들에게 중요한 건 ‘정부 형태’ 자체가 아니라 권력을 얼마나 통제하는지와 국민 생활에 직결된 조항들”이라고 짚었다.

여론 수렴 측면에서는 현재 정치권의 개헌 추진 시간표가 성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계각층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수렴한 헌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1년간의 공론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안 발의 후 20일 동안 공고하고 60일 안에 국회에서 표결하고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한다”면서 “다음 대선 때 개헌을 언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정도가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초기 개헌을 추진할 때에도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있었지만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쓴소리를 들었다. 당시 정부 개헌안 마련을 위해 출범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여론 수렴용 홈페이지를 만들고 숙의형 시민토론회, 심층면접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등 국민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방대한 논의가 오가던 중 논점이 권력구조 개편으로 추려지면서 결국 공론장 성격은 퇴색되고 양 정치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형태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각 정당에서 위촉한 자문위원들이 둘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였다”고 전했다. 김 교수도 “당시 공청회는 눈속임에 불과했고 결국 정치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갔다”면서 “결국 여성에 대한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집단 우대 정책) 등 중요한 조항들이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아이슬란드는 국민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해 헌법을 개정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시민참여 공론화 해외 사례와 시사점’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에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 차례 경기가 휘청한 이후 국면 극복을 위한 개헌 논의가 대두됐다.

아이슬란드는 2009년부터 무작위로 뽑힌 국민들이 헌법 조항에 대해 토론하게 해 여론을 수렴했고, 2011년 이를 바탕으로 헌법심의회가 헌법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 일반 시민들이 ‘크라우드 소싱’(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활용)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헌법 개정안은 매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고, 심의회 회의 과정도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프랑스의 경우는 2019년 개헌 당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해 관련 내용을 개정 헌법 내용에 반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개헌 논의 시 국민 참여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각종 시민단체 및 기관별로 의견을 수렴하거나 무작위 추첨으로 시민들을 선발해 토론하게 하는 식이다. 김 교수는 “시민들이 헌법 초안 작성 과정에 참여하면 헌법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헌법 정신을 준수하려는 마음도 커진다”면서 “국민이 개헌을 주도하면 권력 배분 문제보다 국가 안보, 국민들의 삶과 행복, 노후 보장과 같은 것들이 먼저 논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국회의장 산하 ‘국민 미래 개헌 자문위원회’는 전문가, 시민활동가 등 22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됐다. 주로 헌법학자, 정치학자 등이 참여하던 과거 개헌 논의 기구의 틀은 깬 셈이지만, 전국민이 관심 갖는 논의의 장으로 기능하기엔 역부족인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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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인 개헌 논의와 국민 참여를 가능케 하도록 ‘개헌절차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에 상설특위 ‘헌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시민 수백명이 참여하는 ‘헌법개정국민참여회의’를 구성하는 등의 내용이다. 국민이 개헌안 초안을 직접 발의하는 ‘국민발안제’도 국민 참여를 강화할 방안으로 거론된다.
2025-02-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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