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바꾸다] 업무 효율성의 시대
재택근무 [명사] 집에 회사와 통신 회선으로 연결된 정보 통신 기기를 설치해 집에서 회사의 업무를 보는 일.롯데지주 사회가치창출(CSV)팀의 김혁신씨가 16일 회사가 아닌 카페, 자택 등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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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16일 창간 116주년을 맞아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 4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동 환경의 변화는 생활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처음엔 어색함과 불편함이 컸지만,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서는 업무 효율성도 편의성도 높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택근무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재택근무가 시스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적으로 좀더 유연해져요. 이제 진짜 일하는 방식이 변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시 정상 근무를 했는데 복장도 다 정장에서 캐주얼로 바뀌었어요.”
롯데지주 사회가치창출(CSV)팀에서 일하는 김혁신(38)씨는 지난 2월 27일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전 직원을 3개조로 나눠 일주일씩 순환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지난 5월 25일부터는 복장 자율화와 함께 전 직원 주 1회 집이나 카페 등 원하는 장소에서 재택근무를 한다. 김씨는 자신의 업무 상황 등을 고려해 직접 주 1회 재택근무 날짜를 선택한다. 이처럼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건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업무 능률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장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직장과 집까지의 거리는 한 시간이 조금 넘었는데, 하루에 길거리에서 보내야 하는 세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혼자 근무하다 보니 업무 집중력은 늘고 쓸데없는 회의가 줄어든 것도 장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개개인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더 생겼다. 집에 있다고 일을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자기검열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일을 더 안 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점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기획조정담당관실 김현태 경위.
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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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33) 경찰청 기획조정담당관실 경위는 지난 9일 처음으로 집에서 근무했다. 김 경위는 일주일 중 이틀을 집에서 일하기로 했는데, 업무적으로 월·화·수가 바쁜 만큼 이번 주는 목·금을 선택했다. 김 경위의 고민도 대기업 직장인과 비슷하다. 집에 있으면 혹시 노는 건 아닐까 하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업무 성과에 더 얽매일 수밖에 없다. 김 경위는 “오전 9시에 업무 메신저에 접속하면 되는데 괜히 8시 30분부터 접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일주일 정도 해 보니 경찰이라고 재택근무를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경위는 “원격제어를 이용해 사무실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을 경험하면서 회사에 없다고 자료 공유가 안 되는 건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직장 동료와 업무 얘기를 하잖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거 같아요. 별거 아니었는데 그게 참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IT중견업체에서 일하는 한유림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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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딱히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약속도 잘 안 잡고, 사람 관계에 선을 긋고 생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막상 혼자 일하다 보니 회사 사람들과 카톡을 해도 인간관계가 끊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직장 상사가 직원들을 잘 이끌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고립감을 많이 느끼지 않도록 상급자가 ‘멘탈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소통 애플리케이션 제작사 웨이브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는 채정훈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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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씨는 스스로 재택근무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자율성을 보장받는 상황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업무 환경이 자신에게 더 맞기 때문이다. 채씨는 재택근무에서 이러한 환경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무늬만 재택근무는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봤다.
“어떤 기업은 15분마다 무엇을 했는지 작성해 보고하고 한 시간마다 웹캠으로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재택근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뉴노멀 시대에 재택근무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회사 내 최고의사결정권자인 대표가 직원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직원들도 책임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무늬만 재택근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0-07-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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