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착취 리포트-늙은 지갑을 탐하다] <4> 금융사기 표적 된 노후자금
노인들은 심리 저변에 ‘노후자금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 등이 깔려 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이 마음을 역이용한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oc.kr
박윤슬 기자 seul@seoul.oc.kr
보이스피싱, 유사수신, 투자사기 등 금융사기를 당해 노후자금을 날리는 고령층이 매년 늘어나는 가운데 범인들은 노인들 마음속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려 유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장이 범죄에 사용됐다”, “부동산에 투자해 월 2%씩 수익금을 가져갈 수 있다”는 턱없는 겁박과 제안이 먹히는 건 범인들이 고령층의 심리를 잘 읽고 있기 때문이다.
●‘폐 끼치면 안 된다’는 고령층 심리 꿰뚫고 겁박·제안
서울신문은 22일 현직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등의 도움으로 최근 2년간 나온 노인 대상 금융사기 범죄 판결문 85건에 담긴 101건의 사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노인 피해자들에게는 ▲의지 대상의 부재 ▲문제 해결능력 저하 ▲단순한 행동 패턴이라는 공통 특징이 있었다. 인지·판단 능력이 떨어진 노인들은 보이스피싱범들의 사기극 앞에서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강하게 받았고, 범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판결문 85건 분석… 60대 이상 보이스피싱 피해 2배 ↑
방 프로파일러는 “보이스피싱 범인들은 자신이 금융감독원, 경찰, 검찰 등 공기관 소속이라고 속이는데 노인들은 의심하기보다는 ‘믿을 만한 곳이 나를 도와주려는구나’라고 여긴다”며 “이후 범인들은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을 줘 노인들의 사고를 멈추게 한 뒤 ‘현금을 모두 인출해 집에 숨겨 둬라’는 등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집에 침입해 돈을 가져가는 식으로 범행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60대 이상이 피해 본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5년 6684건에서 지난해 1만 5842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1.6%에서 22.1%로 증가했다.
유사수신 피해를 입는 노인도 늘어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수사 의뢰한 유사수신 사건의 연령별 피해액을 보면 60대 이상이 39억 6000만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절반(51.9%)을 웃돌았다. 유사수신과 투자사기도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힘드시죠’라는 한마디가 투자에 뛰어들게 만드는 ‘방아쇠’가 된다.
특별취재팀 ikik@seoul.co.kr
2020-10-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