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죽은 표, 살려라

[사사건건] 죽은 표, 살려라

손지은 기자
손지은 기자
입력 2018-12-30 17:58
수정 2018-12-3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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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집중 분석

국회가 지난 27일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내년 6월 30일까지 연장했다. 법적 활동 기간이 6개월 늘었지만 21대 총선 1년 전인 내년 4월까지 선거 관련 법안 정비를 마쳐야 한다. 정개특위는 지난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내년 1월 중순까지 정개특위안을 확정한다는 목표로 주 4회 소위 회의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연장 바로 다음날인 28일 제1소위 회의가 개의 20분 만에 파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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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오른쪽)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회의에서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서울신문 DB
심상정(오른쪽)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회의에서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서울신문 DB
●선거제도 개혁은 필수

우리 선거제도는 소선거 지역구제와 병립형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로 요약할 수 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구성된 병립형 혼합선거제도다. 지역구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로 253개 지역구에서 각각 최다득표자 1인만 선출한다. 비례대표는 전국 정당득표율에 따라 47석을 배분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연동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병립식이다.

소선거구 지역구에서 1등 외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20대 총선에서 사표 비율은 50.32%에 달했다. 또 사표가 절반을 넘어가다 보니 비례성과 대표성이 약하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796만 272표, 더불어민주당은 606만 9744표, 국민의당 635만 5572표, 정의당 171만 9891표를 얻었다. 정당 투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 정당 간 득표율을 비교하면 새누리당은 33.5%, 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122석(40.7%), 민주당은 123석(41.0%), 국민의당 38석(12.7%), 정의당 6석(2.0%)을 가졌다. 득표율과 달리 새누리당이 18석, 민주당이 44석을 더 얻었다. 반면 실제 얻은 표보다 국민의당은 45석, 정의당은 17석을 손해 봤다.

현재 모든 정당과 정파가 이런 이유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선거의 본질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려면 모든 사람의 한 표가 똑같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개혁이 필수라는 데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부터 자유한국당까지 의견이 일치한다.

●계속 늘어나는 독일의 의원 정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하지만 독일은 우리 실정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인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따져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단점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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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연방선거법 제6조 제3항에 따라 정당투표에서 최소 5% 이상의 유효한 표를 얻은 정당 또는 최소 3개의 지역선거구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한다. 독일 연방하원의 의석은 598석이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연방하원 선거에서 지역구에서 초과의석이 46석 발생했고 이 초과의석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균형의석이 65석 발생해 실제로 111석이 증가했다. 598명의 의원을 뽑으려고 실시한 선거였지만 실질적으로 709명이 선출됐다.

독일은 균형의석모델을 적용해 정당별 의석 점유가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도록 조정한다. 균형의석은 정당의 득표율에 따른 배분의석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아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균형의석을 추가로 배분해 모든 정당의 의석 점유가 득표에 비례하도록 만든다.

2017년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지역구에서 185석을 얻었지만 최소보장의석은 200석이었다. 최소보장의석은 각 주의 인구수 비율에 따라 주별로 배정한 의석수와 해당 주의 실제 당선자 수를 비교해 더 큰 의석수의 합이다.

CDU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SH)주에서 배분받은 의석은 7명인데 지역구에서 10석을 얻어 최소보장의석은 10석이고 초과의석 3석이 발생했다. 반면 함부르크에서는 3석을 얻어야 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1명뿐이라 비례로 2명을 더 받았다.

이렇게 16개 주를 각각 계산해 모두 더한 기민련의 최소보장의석은 200석. 하지만 기민련은 정당득표율에서 28.2%를 얻었기 때문에 164석을 얻어야 하고, 초과의석 36석 만큼의 ‘과대 대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균형의석을 배분해 모든 정당의 의석 점유가 득표에 비례되도록 전환한다.

균형의석은 단순히 초과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총 의석을 늘려 모든 정당의 득표와 의석점유를 비례적으로 변환하기 때문에 총 의석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는 독일 총선 결과 분석 보고서에서 “특히 득표와 의석점유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정당이 균형의석 결정의 기준이 되는데, 그 정당이 어떤 정당이 될지 추측하기 어렵다”며 “총 의석의 과다한 증가는 선거제도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의원 정수 증가에 따른 세비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의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매번 국회의원 정수가 달라지는 독일도 초과의석 억제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도입, 개별 권역별 명부 방식을 전국 명부로 변경, 균형의석모델을 폐기한 후 ‘정당 간 조정’ 또는 ‘권역 간 조정’ 과 같이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 초과의석을 상쇄하는 방안 등이다.

정개특위도 독일의 사례를 감안해 의원 정수를 300명 또는 330명으로 고정하는 권역별 연동형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고정된 정수를 넘기는 의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동의 의미를 100% 구현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후 의원정수를 더 늘리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 독일식 제도는 일부 권역은 특정 정당이 지역구 의원만 배출하고, 비례대표 의원은 단 한 명도 채우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구 의원으로 정수를 다 채우면 초과의석이 발생한 권역에서 해당 정당은 비례대표 의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권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뽑자고 만들어진 제도인데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의 김영재 박사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면 모든 나라가 채택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일식 선거제도에도 역기능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비례대표 대표성 명확해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 작성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총선마다 비례대표 후보자는 공천권을 가진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명부가 작성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이 수십억원이 오고 가는 비례대표 공천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또 국회에 입성한 후 자신의 전문성이나 대표성을 살리기보다 곧장 지역구를 찾아 헤매는 비례대표 의원의 의정 활동을 보는 국민의 시선도 싸늘하다. 지난달 21일 열린 정개특위 공청회에서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의 증원이 적절한 처방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과연 이 비례대표를 어떻게 공천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객관화하고 정당 명부 작성과 순위 결정과정에 당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지난 19일 한국당 토론회에서 “명부상의 순위에 대한 국민의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이 그 정당이 제시한 후보자 중에서 특정인에 대해 투표하는 것까지 가능케 해 후보자 명부 내에서 순위 변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는 어디까지

정개특위는 지난 3일 세 가지 선거제도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소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제+정수 유지 ▲도농복합선거구제+연동형 또는 병립형의 권역별 비례제+정수 유지 ▲소선거구제+권역별 연동형 비례제+정수 확대(지역구 220석, 비례대표 110석) 등이다.

첫 번째 안은 현행 소선거구제에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의석을 배분한다. 문제는 253석의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여야 한다. 현역 의원이 동의할 리 없다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도농복합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두 번째 안은 인구 100만명 이상인 도시는 중선거구제, 농촌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시행하는 방안이다.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되지만 지역구(225석)와 비례대표(75석) 의석 비율이 3대1이 돼 위헌 여지가 있다.

의원 수를 30명 늘리는 세 번째 안은 의원 정수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국민 여론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2018-12-3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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