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커버스토리] ‘할아버지 나라’ 찾아온 애니깽 4세 세사르

입력 2012-08-11 00:00
수정 2012-08-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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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양궁 韓 금 - 멕시코 은·동 주변에 ‘한국인 핏줄’ 자랑”

이 사내의 할아버지는 ‘치노’라는 말만 들으면 화를 냈다. 치노는 흔히 눈이 째졌다는 뜻으로 멕시코 등 중미지역에서 중국 사람을 비하해 부르던 말이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야!” 그의 외할아버지 베드로 정(1985년 작고)이 그렇게 언성을 높였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멕시코에서 사회복지상담가로 일하는 세사르 안토니오 로사도 정(30)은 그때 알았다. 자신이 멕시코로 이민 온 한인 4세라는 걸. 여태껏 집안 가전제품이 삼성, LG 등 한국 제품으로 도배돼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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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가한 한인 4세 세사르 정이 지난 8일 태권도장에서 사범으로부터 품새를 배우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가한 한인 4세 세사르 정이 지난 8일 태권도장에서 사범으로부터 품새를 배우고 있다.
●가전제품 온통 삼성·LG 도배

베드로 정의 아버지는 한국인 정학순씨, 어머니는 멕시코인이었다. 1905년, 정의 외고조 할아버지인 정인복씨가 학순씨 등 세 아들과 함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갔다. 부산엔 두 딸과 아내를 남겨 둔 채. 4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점기여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순씨가 멕시코인과 결혼해 정착한 뒤 베드로 정을 낳았다.

●“독도 문제 등 日에 적대감”

외할아버지 얘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조국’이 궁금해서 그는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다른 32명의 멕시코 한인 3·4세들과 함께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여했다. 용설란으로 불리는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들인 이른바 ‘애니깽’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서울, 경북 경주, 울산 등지를 돌며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둘러본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가슴에 또 한번 새길 기회가 있었다. 런던 올림픽 경기였다.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멕시코와 한국이 맞붙었다. 금은 한국 차지였지만 멕시코는 은·동을 가져가며 양궁 사상 첫 메달을 땄다. 멕시코팀 지도자 역시 한국인이었다. 어느 편을 응원할 것 없이 마냥 좋았다. 정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선조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하나는 멕시코, 하나는 한국.” 속된 말로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은’ 말을 정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두 살배기 딸이 크면 정은 한국의 역사를 들려줄 생각이다.

“한국은 멕시코보다 자원도 적고 땅도 좁다. 그런데 더 열정적이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한국 전쟁 이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걸 바꾼 기적 같은 나라.”

정은 “내 몸 안에 그런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사는 캄페체에 한국인들이 놀러 오는데 한국과 비슷하다고들 한다.”면서 “와 보니 많이 다르다. 더 부유하고 발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나라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언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느끼느냐고 물었다.

“독도 같은 문제가 이슈화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다.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도 생기고…. 하하.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광복절 아닌가?”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2012-08-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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