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독립의 기상… 발길에 묻히고 세월에 묻혀도[마음의 쉼자리]

우뚝! 독립의 기상… 발길에 묻히고 세월에 묻혀도[마음의 쉼자리]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4-09-06 00:02
수정 2024-09-0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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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종교 천도교의 항일 교육장… 서울 우이동 봉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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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각
봉황각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소중한 걸 곁에 두고 잘 인식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봉황각이 딱 그렇다. 현재 천도교의 의창수도원으로 쓰이는 곳. 천도교의 성지를 넘어 우리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장소인데도 뜻밖에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5년 11월 당시 언론 보도 등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환국한 백범 김구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의암 손병희 묘소를 찾아 귀국 보고를 한다. 백범이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올릴 만큼 의암과 그의 활동 영역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의암의 묘는 봉황각, 천도교 중앙종리원(옛 중앙총부) 건물 등 자신이 세우거나 관여했던 문화유산에 둘러싸여 있다. 의암의 묘와 중앙종리원 건물은 국가등록유산, 봉황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이다.

봉황각은 의암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1912년에 세운 교육·수련시설이다. 당시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은 약 2만 8000평의 땅에 봉황각 등 13채의 건물을 짓고 독립투사를 길러냈다. 3·1운동을 이끈 33명의 지도자 가운데 15명이 봉황각에서 수학했고, 봉황각 출신 독립투사 483명이 나라 곳곳에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러니까 봉황각이 3·1 만세운동의 산실 구실을 했던 셈이다. 나머지 건물은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봉황각은 110년 넘은 건물치고는 상당히 말끔한 편이다. 봉황각은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건청궁 내 곤녕합의 구조와 흡사하다. 외형은 민가지만 격식은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다. 봉황각을 위에서 보면 ‘을’(乙) 자 모양이다. 작은 몸채의 하단 오른쪽 모서리를 큰 몸채의 상단 왼쪽 모서리와 겹쳐 지었다. 그러니까 크고 작은 집 2채가 위아래로 겹치며 ‘을’(乙) 자를 이루는 형태다. 이는 천도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궁을(弓乙)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궁을’은 우주 만물의 순환 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것으로 천도교 상징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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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이 쓴 봉황각
오세창이 쓴 봉황각


봉황각이란 이름은 교조 최제우가 자주 썼던 ‘봉황’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현판은 당대의 명필 위창 오세창이 썼다. 봉황각 옆엔 ‘ㄱ’자 형태의 기와집이 있다. 봉황각과 동시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담으로 나뉘어 있다. 의암이 이 살림채에서 실제 7년 정도 기거하며 독립투사들을 길러 냈다고 한다.

봉황각 아래 적벽돌 건물도 외형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내력을 갖고 있다.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건 1922년이다. 현재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자리가 원래 터다. 1918년에 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같이 기공식을 했으나 3·1운동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1922년에야 비로소 낙성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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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종리원
중앙종리원


애초 천도교 중앙총부라 불리다 중앙종리원으로 변경됐다. 국가유산청에는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이란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1969년 수운회관이 들어설 무렵 철거될 뻔했으나 독립운동 유적 등의 이유로 천도교에서 보전을 주장해 현재 자리로 고스란히 이축됐다. 이 건물에서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이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했고, ‘어린이’라는 새말을 만들었고,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건물 안에 당시 간행됐던 어린이 잡지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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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의 묘는 봉황각에서 50m쯤 떨어진 산자락에 있다. 5분 남짓 걸어 올라야 한다. 이 일대에 의암 외에도 이준, 여운형 등의 묘 5기가 산재해 있다. 모두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봉황각이 깃들여 있는 곳은 북한산국립공원 초입이다. 서울 시민의 여름 놀이터인 우이동 계곡도 이쯤에서 시작된다. 나들이 삼아 찾을 때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2024-09-0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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