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싸워도 소용없다’며 돌아가신 부친…살균제 檢수사 보니 그 말씀 맞아”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싸워도 소용없다’며 돌아가신 부친…살균제 檢수사 보니 그 말씀 맞아”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16-06-26 22:36
수정 2016-06-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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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살아남은 자의 슬픔

5년 투병 부친 잃은 김미란씨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받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싸워도 소용없다’고 하셨는데, 검찰 수사를 보니 그 말씀이 맞는 모양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시청 시민청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추모 전시 공간에서 만난 김미란(41·여)씨는 “아버지가 2013년 피해자 접수를 하려고 하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 그만두라’고 했다”면서 “올해 초 수사를 시작하는 검찰을 보며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옥시 본사도 수사하지 못하고, 정부는 여전히 폐섬유화 외에 기형, 정신장애, 혈관질환 등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정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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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씨의 아버지 고 김명철씨가 몸 상태와 식단 등을 기록한 달력. 2008년 초 건강하던 시기에는 별다른 내용을 적지 않았지만 건강이 악화한 지난해에는 매일 내용이 빼곡하다. “아프고 숨차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김씨의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미란씨 제공
김미란씨의 아버지 고 김명철씨가 몸 상태와 식단 등을 기록한 달력. 2008년 초 건강하던 시기에는 별다른 내용을 적지 않았지만 건강이 악화한 지난해에는 매일 내용이 빼곡하다. “아프고 숨차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김씨의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미란씨 제공
●유아·산모 외 1·2등급 피해자 안돼

김씨의 아버지 김명천씨는 지난해 10월 68세의 나이에 폐섬유화로 세상을 떠났다. 딸 김씨는 2011년 초 가습기 살균제가 몸에 좋지 않다며 사용을 만류하던 자신에게 아버지는 ‘정부가 인증하고 99.9% 인체에 무해하다는데 믿으라’고 호통을 쳤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믿은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을 불러올 줄이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며 “아버지도, 나도, 의사도, 사회도 모두가 무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8년과 2009년 가을·겨울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2010년 초 잔기침이 시작됐고, 그해 7월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2011년 3월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5년간 숨이 차 눕지도 못하는 긴긴 투병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제 기댈 곳은 국회 청문회뿐

김씨는 지난해 말 아버지에 대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폐섬유화가 빠르게 진행된 유아나 산모를 제외하고 노인이거나 서서히 병이 진행된 경우 1·2등급 피해자로 선정되기 힘들다는 얘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영수증이 지금 있을 리도 없고, 당시 주치의마저 유아나 산모가 아니어서 아버지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라고 한다”며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를 수 있고, 나중에 이들이 어떤 병을 앓게 될지 모르는데 이런 허점을 아는지 옥시는 그저 1억 5000만원의 보상안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부와 검찰이 무책임하게 보인다. 이제 기댈 곳은 국회 청문회뿐”이라며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국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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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6-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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