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힘겨루기와 한국 외교] <3>‘동북아 블랙홀’ 북한의 대외관계
최근 동북아시아 외교·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것은 대체로 미국이 일본과의 군사적 밀월 관계를 강화하며 중국의 동북아 패권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 기인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며 대북 압력을 강화했던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요소가 다시 부상하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밀월 관계가 강화되면서 동북아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8월 일본 도쿄 남부 고텐바의 히가시 후지 훈련장에서 일본 육상자위대가 연례 훈련을 하면서 포를 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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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개선 움직임은 지난 7월 중국의 서열 8위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의 방북, 9월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방중 등 고위급 교류가 활성화된 데서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피로써 맺은 친선 관계”를 강조하며 양국 관계 강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중국으로선 미국과 일본의 ‘중국 봉쇄’를 막아줄 방어막으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부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일 군사 동맹 강화가 일종의 ‘탈출로’로 작용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이 본격화될수록 북·중 관계가 이전의 전통적 동맹 수준과 가깝게 유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의 안보 이익과 배치되는 일이지만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계속 등을 돌리고 있을 이유도, 의지도 중국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실질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원유 공급을 중단하지 않은 것이 대북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로 지적됐다.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 때도 전략적으로 북·중 관계를 돈독히 해 왔다”며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강경책은 일시적인 전술적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미래 국정 비전인 세계 강대국으로 발전하려면 그에 걸맞은 국제적 책임감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드러내 놓고 북한 끌어안기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처럼 북·중 관계가 국제 질서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한 북한도 대미, 대일, 대러 등 다양한 채널 확보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에서는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배(한국명 배준호)씨 모자 상봉을 허용하는 등 강온 전략을 써 가며 미국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워싱턴의 기류는 냉랭하기만 하다. 북한의 최근 대외 동향과 관련해 통일부는 “북한이 전술적 차원에서 대외적 국면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와는 2011년 북·러 정상회담 이후 정치적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1억 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북한 나선경제무역특구와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를 5년여간의 공사 끝에 지난달 간신히 재개통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전략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여인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도 북한을 미국 견제를 위한 완충지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린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던 러시아가 중국과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일 관계는 과거사, 납북자, 북한 핵 문제로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 5월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총리 자문역)가 방북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국교 정상화 등을 논의하고 돌아왔지만 성과는 없었다. 대북 ‘압박벨트’에서 벗어난 일본의 당시 돌출 행동에 대해 한·미·중 모두는 비난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얘기하는 비핵화 국제 공조에 일본이 참가하고 있는데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그러면서도 “북한은 확실히 북·일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서 “10여년 전 ‘평양선언’ 당시 일본이 114억 달러의 전후 보상을 약속한 게 사실이라면 일본으로부터 이를 받아내기 위해 관계 정상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3-10-17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