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중은행 대출담당자의 고백

어느 시중은행 대출담당자의 고백

입력 2010-08-02 00:00
수정 2010-08-0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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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을 그렇게 많이 해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실적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시중은행의 대출담당자는 2006년 여신실적 경쟁이 극에 달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는 은행의 대출영업팀장으로 일하면서, 빚 5억 5000만원 때문에 분당에서 자살한 A씨에게 대출을 해준 적이 있다. 대출 이후에 아파트값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006년에는 아파트 값이 일주일에 1000만원씩 무섭게 올랐다. 3억원에 산 집이 10억원이 되고, 15억원이 되는 게 우스웠다.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니까 새 집을 또 분양 받는 사람들도 나왔다. “시쳇말로 자고 일어나면 1억이 오른다고 했어요. 3억~7억원씩 빌린 사람이 수두룩했습니다. 이자를 내도 내 집이 10억원이니까요.”

2007월 4월 인천 송도 국제도시의 한 오피스텔은 청약경쟁률이 무려 4855대1이었다. 이들은 지금 하우스 푸어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대출담당자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는 절대 해주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DTI 비율을 높이는 것은 빚을 더 많이 지라고 권유하는 것과 같다.”면서 “오히려 DTI를 더 강화해 집에 대한 소유욕구를 없애야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2009년 정부가 거치기간 3년을 최대 5년까지 연장해준 것이나 양도세를 감면해준 것은 정말 잘못한 겁니다. 모두가 몇년 후 대박을 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거치기간을 없애야 무계획적으로 대출하는 습관이 없어질 겁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는 대출 창구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했다. DTI 규제가 강화된 이후다. 빌리더라도 1000만~2000만원짜리 소액대출이 대부분이다.

“소액대출도 대출이자 때문에 생활자금 빌려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대출은 거절해야 하는데….”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2010-08-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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