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진단과 해법](2) 소낙비만 피하라

[검찰개혁 진단과 해법](2) 소낙비만 피하라

입력 2010-05-20 00:00
수정 2010-05-2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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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재판 항소율 일반의 2.7배… 국민 외면하는 檢

‘스폰서 검사’ 파문이 확산되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는 듯 “국민에게서 견제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국민과 권력을 얼마나 ‘나눠 가질지’는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됐지만 검찰이 배심원단의 평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비율은 다른 사건보다 높았다. 재판에서 검찰이 국민을 불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면 검찰은 비위 검사에게 사표를 받아 소낙비를 피했다. 그러나 일반 비가 그치면 반격을 가했다. 지금까지 법조비리 폭로자 상당수가 기소돼 법정에 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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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이강원) 법정에서는 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남모(29)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남씨는 지난해 7월 경기도의 한 이발소에서 김모(50·여)씨를 성폭행하고 현금 97만원을 빼앗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남씨는 “돈을 주고 김씨와 성관계를 맺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김씨와 주변 사람, 김씨 몸에 난 상처, 경찰에 신고했던 당시 정황 등을 종합해 남씨가 무죄라고 평결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음에도 원심이 배척했다.”며 항소를 했다. 배심원단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항소는 기각됐고, 남씨는 다시 한번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대되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가 밝힌 이유였다.

검찰이 국민참여재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비율은 다른 재판보다 높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10년도 춘계 형사정책세미나 자료집’에 따르면 2008~2009년 1심 선고가 이뤄진 159건의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의 항소율(쌍방 포함)은 58.5%(93건)로 일반 재판의 검찰 항소율 21.2%에 비해 2.7배나 높다. 국민의 법 정서와 검찰의 법 논리가 상당히 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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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은 최근 사법연수원에서 강연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검찰만큼 깨끗한 데가 없다.”는 발언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다음날 김 총장의 발언이 왜곡됐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시민단체는 ‘검찰이 반성할 줄 모른다.’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는’ 검찰의 모습은 과거사에서도 드러난다. 1983년 간첩활동을 한 죄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던 최모(71)씨는 지난해 재심 법정에서 섰다. 1심 재판부는 “최씨가 보안대 수사관들로부터 고문을 당했고,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도 최씨의 임의성(자발성)이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씨의 주장만으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부인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검찰이 고문을 당한 피의자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 조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당한’ 검찰 탓에 국가 폭력 피해자는 또 한번 통곡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졌지만 대법원에 상고했다.

뇌물 5만달러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재판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한 게 무죄의 원인이었지만, 검찰은 재판부를 맹공하는 데 힘을 썼다. 검찰은 A4 용지 14장에 달하는 자료를 작성해 ‘결론을 내려 놓고 필요한 부분만 끼워 맞춘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비난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검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지만, 스스로 중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10-05-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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