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생 LG전자 노조위원장 “MZ여서 나섰다구요? 시대의 열망이죠.”

91년생 LG전자 노조위원장 “MZ여서 나섰다구요? 시대의 열망이죠.”

한재희 기자
입력 2021-07-15 18:03
수정 2021-07-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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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위원장 인터뷰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노조위원장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인상이 있다. 나이는 40~50대이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단호한 눈빛. 그리고 조끼를 입은 채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불끈 쥔 주먹을 구호에 맞춰 위아래 반복적으로 흔드는 모습.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에서 만난 유준환(30)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은 여태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노조위원장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에 속하는 91년생이고 입사한 지 이제 만으로 3년이 됐다고 한다. 말끔한 대기업 사회초년생으로만 보여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했다. LG전자에는 기존 노조도 있고, 대기업이라 상대적으로 처우도 좋은데 굳이 왜 총대를 메고 별도의 노조를 만들었느냐고.

“배부른 소리라고도 하지만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내면 그 돈을 쌓아 놓을 게 아니라 고생한 직원들과도 더 많이 나눠야죠. 노동자들이 바보 취급을 받으니깐 누군가는 나서야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유 위원장은 연초 회사의 한 팀장이 후배들의 연봉과 관련해 직접 임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며 노조 설립을 결심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인사평가를 절대평가로 진행한다면서도 한 팀에 A를 받은 사람이 몰리면 다른 팀 A보다 낮은 임금인상률을 적용하는데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 팀장은 임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전체적으로 조직원들이 열심히 했고 성과가 좋아서 고가가 A와 B에 몰렸는데 그로 인해 임금 인상 폭이 (다른 팀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것은 문제’라는 취지로 호소했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 위원장은 “대학 때 학생회 활동조차 해 본 적이 없지만 당시 팀장이 용기를 내는 것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면서 “나는 당장 짤리더라도 부양할 자녀나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왕 할 거면 내가 하자’며 시작했다”고 말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집행부가 모두 30대다. MZ세대답게 직장인들의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에 ‘잔다르크’란 아이디로 사무직 노조 결성을 위한 의견을 물은 뒤 구글 설문 플랫폼을 통해 가입 수요를 조사하는 등 온라인을 적극 이용했다. 그렇게 지난 2월 사무직 노조가 탄생했고 현재 가입자는 전체(2만 7000여명)의 13% 수준인 3500여명이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LG전자 강남 R&D센터 인근의 한 모임공간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왜 MZ세대가 주축이 된 노조가 탄생하게 됐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MZ세대의 반란’이란 평가에 대해 유 위원장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거침없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태어난 연도에 따라서 MZ세대라고 나누는 것은 구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MZ세대가 당장의 성과급만 중시한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저 내가 일한 것을 정당하게 보상받길 원하는 것일 뿐”이라며 “시대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답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이것을 참지 않고 블라인드나 카카오톡으로 퍼트리고,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등 MZ세대가 주로 이렇다고들 하는데 요즘은 나이 구분 없이 점점 더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를 MZ세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 회사다니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이제는 불합리합리한 것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세대가 됐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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