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회사의 직원입니다
우리 사장님은 이 도시에서 수많은
굶주림과 결핍의 신입니다
어느 날 사장님께 말했지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의 신이시며
내 삶은 당신의 은덕입니다
그래서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요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덕분에 너는 오래 살 거야
이번에는 일이 많다
내년에 생일을 잘 보내도록 해라
나는 네라고 말했어요
어느 날 다시 사장님께 부탁을 했지요
사장님 당신은 굶주림의 신이십니다
당신의 자비로 집을 꾸며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에게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좋은 날들은 또 올 거야
이번에는 일이 많다
다른 길일에 결혼하도록 해라
나는 다시 네라고 말했어요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내가 말했어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 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번에는 나를 죽게 해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이 시 읽을수록 부끄럽다. 불과 사오십 년 전 한국인들 또한 사우디로 이라크로 리비아로 서독의 광산 노동자로 팔려 나갔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하와이나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지난 시기의 한국인들이 그러했듯 이주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나선 선구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면 손을 잡고 “감사해요” 따뜻한 한마디를 하자.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곽재구 시인
2020-10-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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