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
비슷한 예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마트에 확산되는 무인계산대가 있다. 미국에서는 무인계산대의 등장을 환영하고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밀레니얼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의 전통적 마트의 계산대에서는 점원이 계산을 하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젊은 세대들은 그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에 큰 부담을 느끼다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계산대가 등장하자 긴 줄을 각오하면서까지 그리로 몰렸다.
젊은 세대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단지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좀더 불편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음성보다 텍스트를 선호한다기보다는, 소통 방식에서 동기식(synchronous) 소통보다 비동기식(asynchronous) 소통을 선호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전화 통화나 대면 인터뷰처럼 대화가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것을 ‘동기식 소통’이라고 하고, 이메일 대화처럼 실시간이 아닐 경우 ‘비동기식 소통’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상대방이 받자마자 읽고 곧바로 답을 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받는 사람은 자신이 편한 시간에 일을 처리하고 답을 주면 된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있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상대가 묻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몇 시간 동안 딴짓을 하고 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일수록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동기적 소통을 하는 상황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이메일이나 메시지처럼 대답할 시간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비동기식 소통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들이 자라난 디지털 환경에 있다. 나이 든 세대는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걱정만 했을 뿐, 이메일과 텍스트가 사람들의 성격을 바꿀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기술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를 불러오지만, 애초의 기술 변화도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96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에 건물 전체를 이리저리 관통하는 총길이 50㎞의 강철 진공튜브가 설치됐다. 직원들이 메시지를 담은 캡슐을 튜브에 넣고 받을 곳을 지정하면, 건물 내의 어느 곳에 있는 직원에게도 몇 초 만에 배달이 가능했다.
CIA는 멀쩡한 전화기를 놔두고 왜 이런 장치를 만들었을까. 직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툭하면 소집하는 회의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하려고 ‘비동기식 소통수단’을 마련한 것이다. 처리할 일이 있으면 다짜고짜 찾아가거나 전화를 해서 방해하지 말고 튜브를 통해 메시지와 서류를 전달해서 담당직원이 순서대로 처리하게 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소통방법이었다.
비록 물리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지만, 비동기식이라는 점에서는 이메일과 다르지 않았고 이 사고방식은 그 이후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소통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비동기식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라난 세대가 동기식 소통을 꺼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소통 방법도 변한다. 생산성 연구자들에게서는 비동기식 소통이 오히려 비능률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기술 발달이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 낼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새로운 소통기술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 정치와 사회를 바꿔 놓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2019-12-19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