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김성곤 기자
입력 2018-07-27 15:49
수정 2018-07-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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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구는 깡패다. 골목 깡패는 아니다. 언론사 고위 간부와 대기업 회장, 검사 사이에서 비자금 장부를 들고 게임을 하는 이른바 ‘정치 깡패’다. 어설픈 그의 게임은 곧 들통이 난다. 비자금 장부를 통해 자기 몫을 챙기려다가 되레 손목이 잘리고 버려진다.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간다. 2015년 11월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도 케이블TV에서 때가 되면 한 번씩 상영하는 영화 ‘내부자들’ 얘기다.

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조폭과 정치인이 뉴스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한 공중파 방송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이 경기 성남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마피아파 중간보스 출신이 운영하는 코마트레이드와의 연루 의혹을 보도한 뒤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검찰의 수사를 요청했다. 당사자는 연루는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뛴다. 그를 의심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당 진영이 갈라져 온라인에서 갈등의 불꽃이 튀고 있다.

조폭의 역사는 참으로 뿌리가 깊다. 조폭은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제적인 폭력조직의 대명사인 마피아는 로마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삼합회’ 등과의 관계는 중일전쟁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야쿠자도 막부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막부도 적절히 이를 활용했다고 하니 그때도 권력과 조폭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던 것일까. 야쿠자의 뿌리는 막부시대 도박꾼인 바쿠토(博徒)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야쿠자라는 명칭이 가장 안 좋은 패라는 도박용어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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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요즘 집단으로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배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건달, 깡패 등이 그것이다. 건달은 불교 용어인 건달바(乾達婆)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애초 인도에서는 허공을 날며 음료와 약품을 나른다는 신이었다는 데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놀고먹는 건달로 바뀌었다니 아이러니다. 깡패는 영어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이란다. 영어 Gang과 패거리를 나타내는 패가 결합해서 태어난 용어라는 게 다수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깡패는 언제부터 발호하기 시작했을까. 많은 이가 그 시원을 조선시대 보부상에서 찾고 있다. 보부상을 하려면 산적도 피해야 하고, 다른 패거리들과도 경쟁해야 해서 떼를 지어 다녔고 이들이 가끔 폭력성도 띠곤 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부여됐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관부 대신 정탐도 하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뿌리가 해방 후까지도 지속됐다고 한다.

깡패도 협객으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청산리 대첩의 독립영웅 김좌진의 아들로 불리는 김두한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깡패는 해방 이후 좌익대결 과정에서 정치와 결부돼 정치깡패로 변질된다. 경기 이천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와 결탁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정재는 정치 깡패의 대명사다. 그는 야당과 가까웠던 김두한을 능가했으며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용팔이(김용팔)를 꼽을 수 있다. 1987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던 전두환 정권이 기존 야당이던 신한민주당과 손잡고 김영삼, 김대중 등 야당 중진들이 추진하던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려고 폭력배를 동해 난장판을 만든 사건이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다. 주역이 바로 용팔이라서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당시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치 깡패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하고 있다.

조폭은 이권이 있으면 어디든 개입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칼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깡패의 손에 칼과 도끼가 들리면서 깡패보다는 조직 폭력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른자위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칼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71년 조양은 등 ‘양은이파’가 칼과 도끼로 ‘신상사파’를 습격한 명동사보이호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기적인 단속으로 설 자리를 점차 잃어 가면서 마약 등으로 갈아타거나 재개발·재건축 현장 등의 철거, 주가조작, 기업 인수·합병(M&A)에까지 손을 뻗쳤다. 사업을 확장·보호하고 이권을 얻어내려고 정치권이나 검·경 등에 선을 대는 것도 이들의 오랜 방식이다.

후원도 하고, 선거 때 사람도 동원하고, 낙선자에게는 각종 편의도 제공하고 후하게 대한다. 정치인은 기업인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조폭이라는 명찰은 달지 않는다. 그러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길어지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고, 이권을 취하려 한다. 사진도 찍는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전주에서 찍은 사진 속에 지역 조폭 출신들이 끼었다고 해서 논란되었다. 이번에 이재명 도지사도 성남시절 코마트레이드 사장 이모씨와 찍은 사진이 보도가 됐다.

다들 조폭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지사도 “조폭이 신분 세탁을 해서 접근하면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방송사 보도대로라면 과거 변호도 했고, 성남시장 재직 때 관련기업이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고, 사업도 수주했다면 그 정도 해명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시장이 아니라 공무원이 했다면 그 공무원을 가려내야 한다.

차량과 운전기사 지원설에 휘말려 있는 은수미 시장도 자원봉사자라는 말로 다 해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어차피 이 도지사 등도 자발적으로 수사 의뢰를 했으니 언젠가는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은 온갖 사람과 어울릴 수밖에 없지만, 여과장치는 갖춰야 한다. 신분세탁을 하고 접근해 왔다는 이 모 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는 친구가 대가 없는 돈이라며 건넨 후원금을 받은 뒤 자책하며 세상을 등졌다. 이 지사든 은 시장이든 한국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본인과 주변인의 통장을 잘 들여다봤으면 한다.

김성곤 논설위언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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