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헌재’ 중흥 이끌고 떠나는 이강국 소장

’4기 헌재’ 중흥 이끌고 떠나는 이강국 소장

입력 2013-01-21 00:00
수정 2013-01-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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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확대 주력…사회안정도 고심

법조계 공직자 중 최고 선임인 이강국(68·사법시험 8회) 헌법재판소장이 41년에 걸친 법관 생활을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참여정부에서 지명돼 2007년부터 6년간 헌재를 이끈 이 소장은 기본권 보장의 보루인 헌재의 신뢰성과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대표해온 4기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법 위헌 등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결정을 많이 내렸다.

그러면서도 여론에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고 사회 개혁과 안정 사이의 접점을 찾고자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헌법재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헌법재판연구원을 설립해 헌법연구의 토대를 닦는 등 헌재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구원투수로 등판…중흥 이끌어 = 이 소장은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된 전효숙 재판관(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이 야당 반대로 낙마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애초 전 재판관과 치열한 경합을 펼쳤었다.

그는 법관시절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성향의 판결로 ‘코드 인사’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헌재를 정치논리와 무관하게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할 적임자라는 평을 받았다.

환경론과 개발론이 팽팽하게 맞선 새만금 사업 소송에서 정부 손을 들어주면서도 보충의견으로 환경보전을 강조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법관 재임 중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대체복무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바탕으로 자칫 다양한 가치와 이념의 격전장이 될 수 있는 헌재를 6년간 조화롭게 이끈 것으로 평가된다.

이 소장은 법조계에서 유명한 ‘3대 법조인’으로 부친은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이기찬 변호사, 아들은 사법연수원 교수인 이훈재 판사다.

◇표현의 자유 폭넓게…안정도 중시 = 4기 헌재는 사회개혁을 바라는 시대정신과 사회 안정을 바라는 목소리의 조화를 이루고자 고심했다.

대표적인 결정은 ‘SNS 선거운동 규제 한정위헌’, ‘인터넷 실명제법 위헌’,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등이다.

SNS와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후 SNS는 대선과 총선 등 주요 선거에서 핵심 선거운동 수단으로 떠올랐다.

또 “해가 진 후 옥외집회를 모두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야간옥외집회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반면, 사형제 합헌은 사회 안정에 방점을 둔 결정이었다. 2010년 13년 만에 사형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심리한 끝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독립성 확보…대법원과 갈등도 = 이 소장은 헌재와 대법원의 통합을 주장하는 대법원 측 논리에 맞서 헌재의 독립성을 확고히 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허영 전 연세대 교수를 초대 원장으로 2011년 출범한 헌법재판연구원은 헌재 독립성 확보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헌재의 독립을 당당하게 주장하려면 헌재 구성원이 높은 법리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지론이었다.

헌법재판관 중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자리를 없애고 재판관 전원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헌재의 위상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대법원 내 헌법부를 신설하자는 대법원과의 갈등을 촉발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최근 헌재가 사실상 재판소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리자 대법원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양대 사법기관의 해묵은 갈등은 숙제로 남게 됐다.

◇무료법률상담…6년전 약속 지켜 = 이 소장은 지난 15일 퇴임 오찬간담회에서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것으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할 것”이라고 퇴임 후 계획을 밝혔다.

이는 6년 전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약속한 사항이다.

당시 그는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받은 사회적 혜택을 어떻게 보답하겠느냐”는 질문에 “헌재소장으로 근무하고 난 후에는 법률구조공단의 고문 변호사를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퇴임과 함께 6년 전 약속의 이행을 다짐한 그는 앞으로 사회봉사와 후학양성에 전념할 계획이다.

또 통일 한국의 헌법을 제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헌법학자로서 그의 마지막 남은 꿈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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