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데카르트의 나라 프랑스도 수학 위기 ‘기초·응용’ 균형 이뤄야”
동역학계의 거장인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교수는 해석수학의 1인자로 꼽힌다. 동역학계는 우주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할 때 변화가 생기는 궁극적인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스티븐 호킹이 주도하는 이론물리학과 비슷하며, 이공계와 사회과학에까지 넓게 활용된다. 요코즈 교수는 어린 시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자 영재 교육 시스템인 에콜 노르말에 입학했고, 1985년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동역학의 창시자인 미셸 에르만 교수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11대학(오르셰)에서 수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수학과 이론물리학계의 주요 난제로 꼽혔던 정형화된 동역학계(호모클리닉 역학계)의 현상을 완벽하게 해석해냈다. 이 공로로 199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메달을 수상했다.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11월 한국을 찾게 될 해석수학의 1인자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교수는 기초과학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들 학문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파스칼과 데카르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도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매년 20~30%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학문을 외면하고 의대, 경영대에 가고 싶어 합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부터 한정된 목표가 정해지면서 수학 등 기초과학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접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해석수학자로 꼽히는 장크리스토프 요코즈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수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한국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기초과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공식이나 숫자 대신 새로운 교재와 접근법을 개발해 진정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코즈 교수는 19세기 이후 수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매달려온 동역학계(우주 천체의 정형·비정형적인 움직임을 계산하는 수학)의 난제를 풀어내 37살이던 1994년 필즈메달을 받았다. 그의 이론은 인공위성의 궤도 계산과 핵융합발전소의 플라스마 운영에 적용되고 있다. 필즈메달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뚜렷한 학문적 업적이 있는 40세 이전의 수학자에게만 수여된다. 4년마다 한번씩 시상하며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수상자를 배출했다.
요코즈 교수는 “시대가 변한 만큼 수학자를 비롯한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1950년대만 해도 수학자 한 사람이 논문을 혼자 쓰고 발표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가 됐다.”면서 “좀더 사고의 폭을 넓히면 대중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맞다’와 ‘틀리다’로 구분하는 학자의 틀에 갇혀 있는 한 수학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요코즈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수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유럽이나 미국 쪽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열정적인 연구분위기를 경험했다.”면서 “정보기술(IT) 등 응용과학에서 한국이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균형의 문제일 뿐 기초과학에서도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요코즈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오는 11월 방한해 한국 수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제언할 예정이다. 칠판과 컴퓨터로 가득 찬 그의 연구실 책장 한가운데에는 포스텍에서 선물받은 고려청자가 놓여 있었다.
→광범위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수학은 어떤 학문인가.
-수학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활동적이고 흥분되는 일이다. 문제에 접근해 도전하고 그것을 결국 풀어냈을 때마다 ‘아름답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수학은 과학이라는 학문을 표현하는 기본단위다. 예를 들어 컴퓨터 언어를 생각해 보라. 컴퓨터는 수많은 언어와 프로그램,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결국 모든 것의 기본은 수학이 만들어낸 언어들이다.
→기초과학의 위기는 수학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프랑스 수학계는 어떤가.
-매년 20~30%의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의대, 치대, 경영대가 학생들의 입학희망 1순위가 된 지 오래다. 영국, 독일, 브라질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다들 마찬가지다.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상당수가 금융수학과 응용수학에 매달린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일자리와 미래가 아닐까. 수학의 전망이라는 것은 결국 그것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느냐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응용과학이나 경제학이나 모두 수학이 기초가 되는 것 아닌가. 기본이 흔들리면 결국 위에 쌓은 것들도 곧 무너질 텐데.
-물론이다.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금융수학은 대부분 1950년대에 수학에서 기본이 만들어진 것들이다(경매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의 게임이론도 이때 발표됐다). 지금 기초수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50년 뒤에는 새로운 분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신은 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나. 스승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물리학자였기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무엇보다 에콜 노르말(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사립대학) 시절에 만난 미셸 에르만 교수의 역할이 컸다. 난 도형이나 계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반면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쪽에 적성이 맞다는 것을 에흐만 교수를 통해 깨닫게 됐다. 에르만 교수는 세계적인 수학자였지만 열린 사람이었다.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한때 내가 체스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니까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수학을 관두고 체스대회에 나가려고 하니 말려 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선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능력 있는 선생님이 인간적이기까지 하니 어떻게 신뢰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나.
→37살에 필즈메달을 받았다.
-19세기에 우주 행성의 법칙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도 실제로 천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우주에는 행성처럼 정형적인 움직임을 하는 부분이 있고, 지구온난화처럼 비정형적인 돌발변수들도 있다. 난 이 정형적인 부분에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더라도 긴 시간 동안 맞아떨어지는 해석법을 만들어냈다. 현재 인공위성의 궤도를 예측하는 데 실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핵융합발전소의 플라스마 움직임을 예측하고 조정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노벨상은 나이 제한이 없는데 필즈메달은 왜 40세 이전이라는 단서가 붙나. 필즈메달을 받은 뒤에 주변이나 사회적인 시선은 어떻게 변했나.
-음악과 문학을 생각해 보자. 음악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집중적인 에너지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업적들이 많다. 반면 문학은 경험이 중요하고 실제로 수많은 대작들이 노년기에 나온다. 수학은 음악과 같은 학문이다. 가끔 오일러나 가우스처럼 나이가 들어서 업적을 세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수학자들의 성과는 대부분 젊은 나이에 나온다. 필즈메달 이전과 이후라…. 연구비도 많이 늘었고, 초청도 많이 받았고 대우도 달라졌다. 콜레주 드 프랑스 석좌교수가 되는 영광도 얻었다. 대신 연구할 시간은 줄었다. 그래서 2006년 프랑스인 벤더린 베르너가 필즈메달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았다. 이제 그 쪽으로 관심이 몰릴 테니 난 공부할 시간이 늘어났다. 베르너도 다음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좀 피곤할 거다.
→긴 시간을 한 가지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수학자들이다. 공들여 풀다가 잘못된 길이라는 점을 알면 절망하게 될 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인생이라는 것이 다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서 풀어보다가 다시 돌아온다. 잠시 떠나 있으면 무엇이 잘못됐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은 완벽하게 자유로운 학문이다. 예를 들어 의학, 생물학자들은 어떤 질병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만 파야 하지 않나. 수학은 자기가 풀고 싶은 문제까지도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렸을 때 기초과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식이 아니라, 수학·물리학·화학 등 기초과학을 하면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답안지를 보지도 못한 채 무조건 끌려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수학자들도 바뀌어야 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논문의 저자는 한 사람이었다. 수학자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도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논문은 여러 명의 공동연구로 만들어진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대중과 얘기할 때는 ‘맞다’ ‘틀리다’ 두가지로 이분화된 수학자들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자가 갇혀 있고 매일 숫자와 씨름하는 독특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아시아에서는 아직까지 일본만 3명의 필즈메달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이다(1982년 수상자 야우 싱퉁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계 미국인). 한국과 아시아 수학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06년 포스텍을 방문해 김강태 석좌교수와 대담도 하고, 강의도 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수학계에서는 볼 수 없는 학생들의 열의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응용과학쪽에서 한국이 얻은 성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수학이 홀대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의아했다. 기초와 응용이 연결돼 있는 만큼 균형을 잘 잡았으면 지금 한국 수학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전 속도를 볼 때 최근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다. 11월에 한국에 가면 좀 더 많은 것들을 심도있게 보고 조언할 생각이다. 잠재력이 충분한 나라인 만큼 거는 기대도 크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2010-09-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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