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러스야

나는 바이러스야

입력 2010-07-25 00:00
수정 2010-07-2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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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가 한참 극성을 부릴 때,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엄마, 반 애들이 나한테 바이러스라고 해요” 하며 자신을 놀린 애들 이름을 적어 와 보여주더군요. “괜찮아. 예방접종 했으니까 너는 바이러스 안 걸려”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짜증을 내며 “나 전학 보내줘요. 애들이 화장실에서도 바이러스라고 부르고 책상 만지면 더럽다고 해” 하며 징징대지 뭡니까.

첫 애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친구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이렇게 귀띔하더군요. “여자애들일수록 예쁜 옷 입혀야 해. 솔이 옷이 그게 뭐냐, 만날 얻어만 입히고. 애들 눈에는 겉모습이 중요해 보일 수 있어.”

사실 1학년 때 쓰다 만 공책을 뜯어 모아 겉표지를 만들어 새 학년에 쓰도록 하고 옷과 신발은 조카 것을 물려받아 입혔거든요. 쑥쑥 크는 아이 옷 사는 게 아까워 그랬는데 친구 말을 듣고 나니 너무 얻어만 입혀 놀림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못 먹고 못사는 것도 아닌데 외투라도 하나 사줄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지만, 괜찮다 싶은 건 비싸더군요. 그래서 대신 옷에다 아크릴 물감으로 캐릭터 그림을 그리고 스팽글과 구슬도 달아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줬습니다.

딸아이는 일기에 재활용 옷 이야기를 썼고, 그걸 보신 담임선생님께서 솔이에게 ‘녹색 지구 살리기’라는 주제로 발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솔이는 행복 바이러스야. 솔이가 재활용을 잘해서 지구가 행복해지겠다. 얘들아 우리 솔이한테 행복 바이러스라고 불러주자”라고 하셨고 아이들은 박수를 쳐줬다고 하더군요. 요즘 학교에서 돌아온 솔이는 현관문을 씩씩하게 열고 “엄마, 애들이 내 옷 예쁘대. 나는 행복 바이러스야” 하며 즐거워합니다. 지혜로운 선생님께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행복 바이러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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