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술잔에는

아버지의 술잔에는

입력 2010-01-16 00:00
수정 2010-0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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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언제나 이른 새벽 직장에 나가셨습니다. 자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가는 게 마음에 걸리셨던지,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부터 매일 아침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오늘 기분이 어떠니? 월요일이니까 힘내고. 파이팅!” “오늘은 비가 오니까 따뜻하게 입고 우산 꼭 챙기고, 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알았지?” 그래서 저는 아침에 뉴스를 보지 않아도 오늘 날씨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알 수 있었고 아버지의 응원 덕분에 아침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그런 관심과 애정이 고마운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매일 전화받는 일이 귀찮아졌고, 아버지의 모든 질문에 “응”이라고 건성으로 답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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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고장 난 물건은 무엇이든 뚝딱 고쳐내셨고, 한겨울에도 춥지 않다고 장갑을 벗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추위도, 슬픔도, 힘든 것도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들자 아버지의 모든 모습이 가식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생각하는 척하는 사람, 아는 체하는 사람, 제가 하고 싶은 일만 못 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중2 때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를 보고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혼자 식탁에 앉아 쓸쓸하게 술을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아버지가 서운하시지 않게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처럼 언제나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을 주고서도 비난받는 아버지가 없기를 바랍니다.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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