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가 탄생한 지 30여 년이 지난 <재즈싱어>(1927년)부터였다. 앨런 크로슬랜드 감독이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를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영화의 예술성이 사라지고 더욱 더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대사가 극도로 생략된 채 그 핵심만 자막으로 전달되는 무성영화는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유성영화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직접 전달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이 개입될 공간이 축소된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무성에서 유성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스타들도 세대교체가 진행되었다. 감정표현이 능숙한 무성영화의 배우들보다, 대사를 맛깔나게 잘 던지는 배우들이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미쉘 아자나바슈스 감독의 <아티스트>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기 시작하는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수용자의 감정적 흐름이 훨씬 더 창조적으로 확대된 무성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영화 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까지 가능하게 한다. 무성영화 전성기 시절, 할리우드 최고의 톱스타인 조지 발렌타인(쟝 뒤자르댕 분)은 기자들과 인터뷰하다가 우연히 배우지망생인 페피 밀러(베레니스 베조 분)와 만나게 된다. 페피도 그 인연으로 조지가 일하는 영화사의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단역배우를 거쳐 조연급, 주연급으로 급성장한다.
영화사에서는 향후 영화의 제작을 유성영화에 올인 하기로 결정했지만, 조지는 관객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에 온다는 자신감으로 유성영화를 거부하고 영화사와 결별한다. 그리고 자신이 제작 주연을 맡아 영화를 제작한다. 조지가 떠나간 그 빈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은 페피 밀러. 공교롭게도 조지가 만든 무성영화가 개봉하는 날, 페피 주연의 유성영화가 동시에 개봉한다. 조지의 영화에는 소수의 관객들만 찾을 뿐이고, 페피의 영화는 극장 앞까지 관객들이 넘쳐난다. 조지는 파산하고 부인으로부터도 이혼 당한다.
조지는 작은 집으로 옮기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경매에 넘겨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그의 물건이 경매되는 날에는 항상 나이 든 남자와 귀부인 한 명이 나타나 모든 물건을 싹쓸이해 간다. 조지의 집에 불이 나고 페피는 그를 병문안 오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페피는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어준 조지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었다. 페피의 집에서 조지는, 경매에서 팔린 자신의 모든 물건들이 한 방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매에서 조지의 물건을 사갔던 사람들은 페피 집의 하인들이었다. 조지는 페피 집을 떠나고 그 소식을 들은 페피는 황급히 조지를 찾아간다.
미쉘 아자나비슈스 감독은 무성영화가 멜로드라마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형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오히려 강렬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3D를 넘어 4D 영화까지 극장가에 등장한 21세기에 무성영화라니!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티스트>는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모든 대중문화는 스스로 균형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예술적인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그 시대의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 <아티스트>는 디지털 영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대중들이 갖는 공허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지금까지 각종 영화제와 영화상 등에서 50여 개의 트로피를 획득한 이 영화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상찬에는 이런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티스트>가 놀랍도록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절벽 때문에 더욱 커져 보이는 것이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까지 뛰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티스트>는 철저하게 무성영화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렇게 전개된다. 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실제 흑백 무성영화로 전개된다. 배우들의 대사 발성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쯤에서야 겨우 몇 마디 등장한다. 대부분 음악과 자막으로, 진짜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처럼,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흑백 시절의 질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아티스트>는 컬러필름으로 촬영된 후 흑백화면으로 재조정 되는 과정을 거쳤다. 또 화면의 크기도 가로 사이즈가 길어지는 와이드 화면과는 정반대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1.33:1의 포맷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감각은 1백여 년 전과는 다르게 현대적이다. 분명히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형식까지 그렇게 따라가고 있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감각만큼은 현대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조지 발렌타인 역의 장 뒤자르댕은 <아티스트>로 이미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러브 코미디뮤지컬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티스트>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팔자 모양의 콧수염을 기른 그는 유쾌하고 댄디한 신사의 멋을 한껏 보여준다. 희로애락의 감정표현 어느 부분에서도 관객과의 마찰감 없이 부드럽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장 뒤자르댕의 가장 큰 장점이다.
페피 밀러 역의 베레니스 베조는 <아티스트>를 만든 미쉘 아자나비슈스 감독의 부인이다. 아르헨티나의 미구엘 베조 감독의 딸로 태어나 <기사 윌리엄>(2001년)의 크리스티나 역으로 이름을 알린 뒤 스실러 <도망자>(2011년)로 인정을 받았다. 신분 상승에의 욕망을 갖고 있지만 인간적 순수함과 조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페피 역을 약간 과장되지만 매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티스트>가 갖는 파격적인 형식 실험은, 디지털 시대의 일회적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만 단순히 복고취향을 자극하는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과거의 영화적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영화형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길도 열어놓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중적 스토리텔링의 상업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감각의 형식적 도전이 숨어 있는 것이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미쉘 아자나바슈스 감독의 <아티스트>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기 시작하는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수용자의 감정적 흐름이 훨씬 더 창조적으로 확대된 무성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영화 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까지 가능하게 한다. 무성영화 전성기 시절, 할리우드 최고의 톱스타인 조지 발렌타인(쟝 뒤자르댕 분)은 기자들과 인터뷰하다가 우연히 배우지망생인 페피 밀러(베레니스 베조 분)와 만나게 된다. 페피도 그 인연으로 조지가 일하는 영화사의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단역배우를 거쳐 조연급, 주연급으로 급성장한다.
영화사에서는 향후 영화의 제작을 유성영화에 올인 하기로 결정했지만, 조지는 관객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에 온다는 자신감으로 유성영화를 거부하고 영화사와 결별한다. 그리고 자신이 제작 주연을 맡아 영화를 제작한다. 조지가 떠나간 그 빈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은 페피 밀러. 공교롭게도 조지가 만든 무성영화가 개봉하는 날, 페피 주연의 유성영화가 동시에 개봉한다. 조지의 영화에는 소수의 관객들만 찾을 뿐이고, 페피의 영화는 극장 앞까지 관객들이 넘쳐난다. 조지는 파산하고 부인으로부터도 이혼 당한다.
조지는 작은 집으로 옮기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경매에 넘겨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그의 물건이 경매되는 날에는 항상 나이 든 남자와 귀부인 한 명이 나타나 모든 물건을 싹쓸이해 간다. 조지의 집에 불이 나고 페피는 그를 병문안 오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페피는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어준 조지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었다. 페피의 집에서 조지는, 경매에서 팔린 자신의 모든 물건들이 한 방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매에서 조지의 물건을 사갔던 사람들은 페피 집의 하인들이었다. 조지는 페피 집을 떠나고 그 소식을 들은 페피는 황급히 조지를 찾아간다.
미쉘 아자나비슈스 감독은 무성영화가 멜로드라마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형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오히려 강렬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3D를 넘어 4D 영화까지 극장가에 등장한 21세기에 무성영화라니!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티스트>는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모든 대중문화는 스스로 균형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예술적인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그 시대의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 <아티스트>는 디지털 영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대중들이 갖는 공허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지금까지 각종 영화제와 영화상 등에서 50여 개의 트로피를 획득한 이 영화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상찬에는 이런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티스트>가 놀랍도록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절벽 때문에 더욱 커져 보이는 것이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까지 뛰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티스트>는 철저하게 무성영화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렇게 전개된다. 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실제 흑백 무성영화로 전개된다. 배우들의 대사 발성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쯤에서야 겨우 몇 마디 등장한다. 대부분 음악과 자막으로, 진짜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처럼,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흑백 시절의 질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아티스트>는 컬러필름으로 촬영된 후 흑백화면으로 재조정 되는 과정을 거쳤다. 또 화면의 크기도 가로 사이즈가 길어지는 와이드 화면과는 정반대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1.33:1의 포맷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감각은 1백여 년 전과는 다르게 현대적이다. 분명히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형식까지 그렇게 따라가고 있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감각만큼은 현대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조지 발렌타인 역의 장 뒤자르댕은 <아티스트>로 이미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러브 코미디뮤지컬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티스트>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팔자 모양의 콧수염을 기른 그는 유쾌하고 댄디한 신사의 멋을 한껏 보여준다. 희로애락의 감정표현 어느 부분에서도 관객과의 마찰감 없이 부드럽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장 뒤자르댕의 가장 큰 장점이다.
페피 밀러 역의 베레니스 베조는 <아티스트>를 만든 미쉘 아자나비슈스 감독의 부인이다. 아르헨티나의 미구엘 베조 감독의 딸로 태어나 <기사 윌리엄>(2001년)의 크리스티나 역으로 이름을 알린 뒤 스실러 <도망자>(2011년)로 인정을 받았다. 신분 상승에의 욕망을 갖고 있지만 인간적 순수함과 조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페피 역을 약간 과장되지만 매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티스트>가 갖는 파격적인 형식 실험은, 디지털 시대의 일회적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만 단순히 복고취향을 자극하는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과거의 영화적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영화형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길도 열어놓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중적 스토리텔링의 상업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감각의 형식적 도전이 숨어 있는 것이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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