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인가, 백성의 뜻인가… 한반도 쿠데타 ‘뿌리’를 찾다

하늘의 뜻인가, 백성의 뜻인가… 한반도 쿠데타 ‘뿌리’를 찾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5-01-15 17:37
수정 2025-01-1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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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부터 발해까지 고대 한반도
권력 구조 변화 만든 주요 사건 조명
고구려 초엔 신화에 기대 자격 논해
시간 지날수록 폭정 등 민생이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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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양대군은 1453년 김종서, 황보인 등 반대파를 제거, 숙청해 정권을 장악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정변이나 정난은 현대의 쿠데타와 같은 개념이다. 역사학자 8인이 한반도 고대사에서 벌어진 사건을 정변의 관점에서 해석한 학술서를 내놨다. 사진은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이정재)이 극 중 처음 등장하는 장면. 쇼박스 제공
조선시대 수양대군은 1453년 김종서, 황보인 등 반대파를 제거, 숙청해 정권을 장악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정변이나 정난은 현대의 쿠데타와 같은 개념이다. 역사학자 8인이 한반도 고대사에서 벌어진 사건을 정변의 관점에서 해석한 학술서를 내놨다. 사진은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이정재)이 극 중 처음 등장하는 장면.
쇼박스 제공


지난해 발생한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가 한 달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쿠데타’는 강압적인 군부 정권과 민주화 운동의 기억이 단단히 얽힌 사건이다. 쿠데타는 약 60년 동안 한국 정치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시민에게는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런데 쿠데타는 현대사에만 나타난 사건은 아니었다. 권력 구조를 둘러싼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는 늘 쿠데타, 바로 정변이 있었다.

역사학자 8명이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한국 고대사에서 나타난 주요 사건을 쿠데타 관점에서 조명한 ‘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틈새의시간)라는 학술서를 내놔 눈길을 끈다. 연구자들은 위만의 정변과 위만조선의 건국, 고구려 7대 국왕이었던 차대왕의 정변과 초기 왕위 계승 원칙의 변화, ‘일본서기’에 보이는 백제의 정변에 대한 고찰, 백제 초기 왕위 계승과 정변, 신라 상대의 왕위 계승과 정변, 신라 하대의 쿠데타와 대외교섭, 발해의 변혁 등과 같은 여러 사건을 사료 고증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면밀하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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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고구려 초에는 정변의 명분으로 ‘천제의 아들’이라는 혈연성과 주몽의 활로 대표되는 무력이 중요했다. 부여에서 독립한 초대 왕 주몽(동명왕)과 그 뒤를 이은 유리왕의 등극은 왕실의 권위와 현실적 힘이라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4대 왕인 민중왕 이후부터는 정변의 명분이 유소(幼少), 노쇠, 폭정, 과도한 수취와 노역 등으로 옮겨 갔다. 쿠데타의 명분이 통치 대상인 백성을 향해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한마디로 초기에는 신화에 기대거나 자격을 논했지만 이후에는 민생 등 현실 문제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신라 하대에 벌어진 쿠데타 상황도 흥미롭다. 신라 하대는 삼국 통일 후 약 100년이 지난 780년 김양상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하고,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155년 동안 13차례의 쿠데타가 시도돼 총 4건이 실제 왕위 찬탈에 성공한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하대 시작 후 약 60년 동안 집중됐지만 840년 이후 시도된 쿠데타는 모두 실패했다. 이는 하대 후반의 왕들이 쿠데타에 적극 대비한 점도 있지만 쿠데타보다 지방 호족의 발호, 백성들의 봉기 등 다양한 저항 방식이 나타나면서 중앙 귀족 중심의 신라 사회가 해체하는 과정과 일치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쿠데타로 즉위한 선덕왕, 원성왕, 헌덕왕 등은 모두 즉위 2년 이내에 당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는 정변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국제적 정당성을 얻기 위함으로 해석된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대표 저자인 김희만 서강대 디지털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이 책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단순히 과거사의 개별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고대사의 정변을 통해 오늘날 정치적 문제를 반추하고 이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연속성이라는 통찰 아래 역사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2025-01-1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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