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사회 참여 이끈 월주스님 입적
1980년 조계종 총무원장 때 5·18 발발광주서 위령 법회… 정권 눈엣가시 찍혀
경실련 대표·나눔의 집 설립·NGO 활동
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등 사업 추진
총무원장 3선 도전, 종단 파행 원인 돼
22일 입적한 월주스님은 생전 불교계의 사회 참여에 앞장서 왔다.
1935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난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과 사제의 연을 맺어 출가했고, 1961년부터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운동에 나섰다.
1980년 4월 17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스님은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같은 해 6월 직접 광주 관음사를 방문해 희생자 위령 법회를 올렸다. 스님을 ‘눈엣가시’로 여긴 전두환 정부는 군인을 동원해 전국 사찰을 수색한 ‘10·27 법난’을 일으켰고, 스님은 보안사로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총무원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1월 당선자 시절 일산 자택에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스님(오른쪽부터),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했다. 이들 종교 지도자들은 당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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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1994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3선 연임을 강행하다 반발에 부딪혀 물러난 뒤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이어 그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28대 총무원장으로 재선되며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그는 재선 총무원장 때 ‘깨달음의 사회화’를 표방하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는 등 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1998년 한 차례만 중임할 수 있는 총무원장 3선에 도전했다가 종단이 4년 만에 다시 파행으로 치닫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실업 대란이 이어지자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했다. 2003년에는 비정부기구(NGO) 지구촌공생회를 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대상으로 식수·교육·지역개발사업을 폈다.
2009년 9월 월주스님이 ‘나눔의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는 모습.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임종게(臨終偈)에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이라고 남겼다. 장례는 5일간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에 거행한다.
2021-07-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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